[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5. 불화의 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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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혼 초 무대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필자.

베트남 위문공연을 마치고 서울 세검정 신혼 집으로 돌아오자 길옥윤 선생의 생활 태도는 다시 일본 시절과 똑같아졌다. 매일 밤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왔다.

또 아침에 입고 나간 옷을 그대로 입고 들어오는 적이 거의 없었다. 넥타이며, 재킷이며, 심지어 겨울 코트까지 “형님! 그거 참 좋아 보이네요!”하는 사람이 있으면 냉큼 벗어주거나 바꿔 입는 것이었다. 내가 외국 공연 갔다가 사다 준 멋진 넥타이며, 레인코트가 남아 있질 않았다.

“아니 그게 그렇게 좋다는데 어떻게 해? 나야 뭐 아무 거나 해도 괜찮은데….”

그런 사람이었다. 길 선생은 남이 좋다고 하면 무엇이든 벗어주고 바꿔줄 만큼 정이 많고 욕심이 없었다. 그는 또 얌전한 외모만큼이나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 고운 심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아깝고 속상했다. 그 바쁜 스케줄에도 내가 얼마나 고르고 골라 사온 것들인데 그렇게 거리낌 없이 줘버리고는 아무거나 상관이 없다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토록 욕심이 없을까 싶었다.

길 선생은 섬세하고 여렸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폐를 끼칠 줄도 몰랐다. 그래서였는지 술에 취하면 자주 울었다. 마음이 약해 좀처럼 심한 말을 할 줄 몰랐으나 술을 마시면 가끔 독설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혼잣말처럼 자조 섞인 말을 하다가 괜한 트집을 잡아 싸움을 걸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뭐가 그리 서러운지 울기까지 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매일 밤 술을 마시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글프고 서러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준! 제발 술 좀 그만 마셔요! 도대체 왜 술을 마시지 않고 지내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거예요?”

그의 술버릇으로 인한 부부 싸움과 나의 바가지는 신혼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좀처럼 술을 자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별거에 들어가기 전 부부싸움을 한 이유는 90% 이상이 술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며칠씩 연락두절이 되기도 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그야말로 숯덩이처럼 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찾아 다닌다고 해도 찾을 길도 없었지만 외박한 남편을 먼저 찾아 나선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은 그냥 기다렸다.

하지만 슬슬 걱정도 되고 불안해져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어느 호텔에서 몇몇 사람과 어울려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찾아가 보니 술에 잔뜩 절어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됐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도박판에는 팀을 이뤄 몰려다니는 사기꾼들이 있었고, 순진하고 어수룩했던 길 선생은 그들의 타깃이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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