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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교사·학교가 잘 가르치겠다고 경쟁하라는 게 교육 자율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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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난 사람=송상훈 정책사회데스크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키가 1m90㎝에 가깝다. 두 달여 전 장관에 임명될 때 “멀리 내다보고 일하라고 발탁한 것 같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는 취임 이후 대외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거의 없다.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출신인 그가 교육정책 수장이 된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자율화’ 정책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했다. 인터뷰는 ‘얼리 버드(early bird)’ 바람을 반영하듯 25일 오전 7시30분부터 두 시간 가까이 그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장관이 된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학교와는 많이 다를 텐데.

“학교 있을 때도 일찍 일어났지만 그때는 피곤하면 잘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웃음) 두 달간 지내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몸이 그렇다는 것이다. 머릿속은 아직 아니다.”

-새 정부의 교육개혁은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으로 시작했다. 이후 단계적 자율화가 진행되고 있다. 장관이 생각하는 교육개혁은 무엇인가.

“교육 문제에 ‘개혁’이나 ‘혁신’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단어는 쓰지 않았으면 한다. 교육이란 것은 점진적으로 바뀌고 점진적으로 개혁돼야 한다. 이 변화를 좀 더 빠르게 하려고 교과부가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다양성을 도입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각종 규제를 없애는 ‘4·15 자율화 계획’ 발표 이후 반발이 만만찮다.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자율화를 반대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까지 시작했다.

“용수철을 꽉 눌러 놓고 있다가 갑자기 손을 떼면 반발력이 세서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지금이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0교시(정규 수업 전 이른 시간의 보충수업)와 같은 문제는 (시·도 교육청 단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교에서 직접 결정했으면 한다. 그런 부분까지 중앙정부가 일일이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율화에 반대하는 측은 경쟁 일변도의 교육정책이 학생·학부모만 힘들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이미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간·교사 간의 경쟁, 서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경쟁은 없었다. (자율화로) 학교 간·교사 간 경쟁을 하게 되면 학생·학부모의 스트레스는 줄어들 것이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중앙정부의 규제를 없애는 대신 시·도 교육감의 권한이 막강해졌다. 선출직인 시·도 교육감에 대한 불신도 있다.

“지난해 2월 부산시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이 15%대였다. 국민이 교육에 대해 누구나 관심이 높다고 하면서 정작 교육감 선거의 참여율이 낮다는 것은 굉장한 아이러니다.”

-교육감 후보 자격을 교직·교육공무원 경력자에게만 주는 것은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육계뿐 아니라 어떤 집단도 개방이 중요하다. 폐쇄적이어서는 발전이 없다. 개방을 해야 경쟁이 일어난다. 교육계가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외부 인사들도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교과부 차원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교원평가·교육 정보 공개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교원평가 법제화를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교원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현재로선 어려워 보인다.

“어떤 집단이든 평가가 있어야 발전한다. 평가 없이 발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원평가는 올해도 669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평가는 시범 실시 때처럼 인사와 직접 연계하지 않은 채 시작할 것이다. 다만 평가 결과가 어느 정도 공개된다면 진일보한 제도가 될 것이다.”

-평가 결과를 어떻게 공개할 수 있나.

“현재는 본인에게만 알리게 돼 있다. 교원 개인에 대한 평가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학교 전체의 평가 수준은 확인할 수 있다. 곧 도입되는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대한 특례법’(교육정보공개법)에 교원평가 결과 공개 범위를 포함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교원단체의 입장을 반영해 가능한 한 많은 내용을 공개하려고 한다.”

-교원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

“엄청난 저항이 있을 수도 있다. 이미 대학에선 교수평가를 공개하고 있다. 초·중등 학교와 교사도 투명하게 교원평가를 공개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평가가 나쁜 교원을 제재하려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를 합당하게 평가하고 대우해 주자는 것이다. 모든 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면 끝이 없다.”

-교육정보공개법이 다음달 26일부터 시행된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은 학교 간 실력 차가 어느 정도 드러날지다. 학력 정보를 언제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계획인가.

“개인적으로는 가능한 한 학부모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법은 지난 정부에서 통과됐으나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이 마련되지 못했다. 정보 공개에 대한 이해 당사자로서 학교의 입장이 중요하다. 교사와 교장, 교육감 등과의 의견 조정 때문에 시행령이 늦어지고 있다. 6월께 확정될 것 같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10월께면 학교 관련 정보를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학교별로 주요 교육 정보를 공시하고 이를 종합적으로 연계한 교육정보시스템을 10월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영어 교육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영어 공교육 강화가 이슈가 됐다.

“영어 교육은 중요하지만 너무 큰 이슈가 됐던 것 같다. 공교육만 마쳐도 지금보다는 좀 더 쉽게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정부의 취지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듣기·말하기 등 회화 중심으로 영어 교육을 바꿔나가자는 것이지 영어에 절대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정책이 아니다.”

-2013학년도부터는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외국어(영어) 영역이 제외되고 국가영어능력시험으로 대체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2013학년도에는 수능에서 영어가 제외되나.

“수능에서 영어를 제외한다는 것 자체도 심층 검토해 봐야 한다. 현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개발하고 있는 영어 능력 평가도구가 (대입 전형 요소로서) 적합한지 봐야 한다. 도입 시점도 마찬가지다. 지금 단계에서 2013학년도에 수능에서 영어 평가를 제외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더 빨리 (제외)될 수도 있다. 시범 결과가 좋다면 말이다.”

-영어 교육을 위해 원어민 교사를 늘리고, 교포 대학생 500명을 초청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존 영어교사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계획은 없나.

“기존 교사를 영어권 국가에 보내 연수시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교사들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심화 연수를 실시하기 위해 새로운 발상의 연수 방식을 검토 중이다. 교사를 연수시키는 민간 연수기관을 대폭 늘리고, 교사에게 수강권(바우처)을 지급해 교사가 스스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을 생각 중이다.”

◇자율형 사립고 등

-고교 유형을 다양화하는 ‘고교300 프로젝트’ 중에서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학생 모집은 어떻게 하며, 언제쯤 개교가 가능한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넓히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해 창의교육을 하자는 게 자율형 사립고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과 사교육 수요를 줄여 주기 위해 학교별로 실시하는 지필고사는 금지할 것이다. 선지원·후추첨제를 포함해 지역별 여건을 고려한 다양한 입학 전형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준비기간을 거치면 2010년께 개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정원을 포함해 제도를 바꿀 생각은 없나.

“로스쿨 관련 당사자 중 잘 됐다고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분명히 로스쿨 제도의 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총정원 문제, 개별 대학 정원 상한선, 예비 인가 심사 과정의 문제 등 모든 부분에서 이견이 크다. 굉장히 다양한 의견이 있고, 잘했다는 의견이 적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로스쿨 개원도 하기 전에 당장 제도를 바꾸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공계 발전 방안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 발전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공계에 끊임없이 젊은이들이 올 수 있게 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공계 연구자들 사이에서 문제가 심각한 PBS(Project Based System)에 대한 개선책도 내놨다. PBS는 연구원의 인건비를 30%만 보장하고 나머지는 연구자가 직접 프로젝트 수주 등을 통해 벌어와야 하는 제도다. 연구자가 단기적으로 돈이 되는 프로젝트 확보 경쟁에만 매달려 장기적인 연구가 부실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 PBS를 개선하면서 연구원 인건비를 7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편하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김도연 장관은

김도연(56) 교과부 장관은 평생 공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1982년 서울대 교수 부임 이래 세계 유수 학술지에 25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서울대 공대 학장 시절(2005년 9월~2007년 9월) 학장 직선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간접 선거제를 도입했다. 교수 정년 보장 기준을 강화하고 공대 교수들의 강의록을 인터넷에 올리게 하는 등 개혁을 주도했다. 지난해 서울대 공대가 사상 처음으로 신임교수 공채에 실패했을 때 학장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무차별 평등주의가 인재를 해외로 내몰고 있다”며 대학 조직 문화를 비난했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공대(재료공학과)를 거쳐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리=강홍준·배노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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