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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창간 10년 … 중앙일보 이렇게 달라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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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가 제2 창간을 선언하고 개혁을 시도한 지 만 10년이다. 그간 3섹션, 가로쓰기, 전문기자제 도입, 가판 폐지 등 한국 신문의 형태 변화를 획기적으로 주도해 왔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지난해 사회면을 전면으로, 오피니언면을 후면에 배치함으로써 신문 형태에서 일제의 잔재를 일소했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내용이다. 우리는 제2 창간 10년을 맞아 형식 개혁을 완료하고 내용 개혁에 진력하고자 한다.

*** 언론 기능 소홀했던 과오 반성

우리가 외형적 개혁을 시도한 이래 대부분의 신문이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물론 내용상 차별도 있지만 대체로 대통령 권력 옹호냐 반대냐 하는 2분법적 단순 차별에 그치고 있다. 중앙일보가 '열린 생각 열린 신문'을 표방한 것도 이런 양극적 단순 차별에서 벗어나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뛰어넘어 한국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일류 언론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또 한번의 새 출발 선언을 위해 중앙일보 구성원들은 39년의 비교적 짧은 신문 연륜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러 과오를 자인하고 독자 여러분께 늦게나마 사죄코자 한다.

독재 권력에 약했다. 비굴하기도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보도에 철저하지 못했고 강자 편에 서서 오만했으며 약자와 소외계층의 고통을 외면했던 과거도 있었다. 대기업 관련사로 출발해 운신의 폭이 좁았던 때도 있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생겨났던 이념.지역.계층 갈등에 화합.조정 능력이 미흡했던 점도 시인하고 반성한다. 이제 허물을 씻어내고 거듭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또 하나의 권력기관으로서 우리 신문이 때로는 정파적 이해에 끼어들고 정확하지 못한 기사로 펜을 칼처럼 휘둘러 무고한 인권을 해치고 개인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점은 없었는지 몸을 낮춰 자숙하면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런 반성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오늘부터 신문 기사 글쓰기 방식부터 바꾸려 한다. 보도와 분석을 분리한다. 신문 기사는 크게 보도.기획 기사와 사설.의견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지금껏 보도인지 주장인지 감정마저 뒤섞인 논평식 보도 기사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신문 기사의 객관성.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보도와 분석과 의견을 엄격히 구별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의 1, 2, 3면은 이런 원칙에 입각한 보도 기사로 가득 찰 것이다.

신문의 얼굴은 1면이다. 이제 우리는 중앙일보의 독자적 얼굴을 갖고자 한다. 1면 팀을 따로 구성해 차별화된 지면을 선보이겠다. 정확한 글 쓰기와 정교한 디자인은 활자 매체인 신문의 생명이다. 정확하면서도 단아한 글 쓰기를 위해 작가 김주영씨를 '라이팅 코치'로 영입했다. 김주영씨는 소설 '객주'로 문명을 떨쳤고 최근 '홍어' '멸치' 연작으로 글 쓰기의 전형이 무엇인가를 모범적으로 제시한 작가다. 그는 중요 기사를 다듬고 손질해 독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 사실.주장 버무린 글쓰기 그만

선 하나, 사진 한점의 배치에 따라 지면 구도가 달라지는 신문의 편집 디자인은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은 바 있고 시각디자인에 독보적 경지를 확보한 박경미씨가 '디자인 코치'를 맡아 지면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언론의 존재는 권력 비판 기능에 있다. 보도의 객관성.공정성 확보가 권력 비판 기능 약화를 결코 뜻하지 않는다. 불편부당과 시시비비는 우리의 고유 업무다. 다만 그 비판이 정파적 이해나 이념적 편가르기, 지역적.계층적 갈등을 부추기는 쪽이라면 단연 거부한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정치적 분열을 봉합하면서 글로벌 기준에 맞춰 세계 속의 한국을 약진시키는 방향으로 우리는 주장을 계속하고 논평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오피니언면은 모든 견해를 망라하고 여러 주장이 수용되는 공론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 정부 예산 1%를 대북 지원에 쓰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가 제기된 이래 이 제안은 유보됐다. 이제 우리는 다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화해 협력 증진을 위해 우리 역할이 무엇인지를 독자 여러분께 소상히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 권력 비판 소명 늘 염두에

소외계층, 불우한 이웃에 우리는 관심을 갖고 일찍이 자원봉사 붐을 선도해 왔고 '아름다운 가게'운동을 통해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켜 왔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가난의 대물림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그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지속적 연구를 통해 기획 기사와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오보.인권 침해와의 싸움은 언론의 숙명이다. 또 총선과 탄핵정국에서 복잡한 법 해석 논쟁도 예상된다. 무고한 시민의 인권침해 사례가 없도록 내부 점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강종호 변호사를 사내 변호사로 채용했다. 그는 기존의 법률자문위원단(위원장 강원일 변호사)과 공조해 기사로 인한 인권 유린과 부당한 피해가 없도록 세심한 배려를 할 것이다.

우리의 개혁은 단순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지면으로 독자 여러분과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독자 제현의 아낌없는 질책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중앙일보 편집인 권영빈

*** 1994.6.9 국내 첫 전문기자제 도입
1994.9.1 '섹션 신문' 새 장 열어

1965년 닻을 올린 중앙일보는 94년 3월 21일 제2창간을 선언했다. '21세기 초일류 언론'을 비전으로 삼고, 질 위주의 경쟁을 펼쳐 나갈 것을 천명했다. 개혁은 숨가빴다. 우선 그해 6월 9일 국내 언론 최초로 '전문기자제'를 도입, 15명의 박사급 기자를 선발했다. 그리고 9월 1일. 중앙일보는 종합.경제.스포츠 3개 섹션(section)으로 구분된 48면 '섹션 신문'을 처음 선보였다. 독자들이 관심분야와 필요한 정보에 따라 신문을 '골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타 신문들도 경쟁적으로 중앙일보를 따라왔다. 독립신문이 한글 신문으로 신문사(史)에 한 획을 그었다면 중앙일보는 '섹션 신문'으로 새 장을 연 셈이다.

*** 1995.10.9 모든 지면 가로쓰기로

중앙일보는 1995년에도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4월 15일 지령(紙齡) 9307호부터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한 데 이어 10월 9일 한글날부터는 주요 일간지 중 처음으로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했다.

신문은 세로로 읽어야 한다는, 100년을 이어온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가로쓰기로 바꾼 이후 대부분의 독자는 가독성(可讀性)이 크게 개선됐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후 다른 신문들도 잇따라 가로쓰기로 전환했다.

*** 2004.3.22 굴절 없는 심층 보도 틀 마련

중앙일보가 한국 언론 최초로 스트레이트(보도)기사, 분석 기사, 의견 기사를 엄격히 구분해 편집.제작하기로 했다. '사실 전달'에 기초를 두는 저널리즘 정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이해관계나 정파적 관점에 따라 사실이 왜곡되고 취사선택되는 관행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요리하기 전 날것 그대로 재료를 공급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겠다는 취지도 있다. 대신 분석 기사는 전문성을 갖춘 기자들이 사안의 원인과 배경.파장 등을 포괄적이며 심층적으로 해부한다.

이미 세계 권위지들은 이런 방식으로 신문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1면에서부터 사실과 분석 기사를 분리, 최대한 사실 자체를 부각하려 하고 있다. 분석 기사의 경우 '뉴스 분석(news analysis.뉴욕 타임스)' '분석(analysis.워싱턴 포스트)'등으로 표현해 차별화한다. '심층(in-depth)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분석 기사는 각 분야 전문기자들이 냉철한 시각으로 사태를 해설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뉴욕 타임스는 최근 1면 톱으로 '부시, 동성애 결혼 법으로 금지'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그 옆에 '지지 기반에 믿음 줘'라는 분석기사를 붙였다.

물론 서구에서도 정파 혹은 당파 저널리즘이 판친 적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애완견'보다 '감시견'의 역할이 강조됐고, 그 결과로 일류지들은 객관 및 정밀 저널리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 전달로 현실에 대한 인식 공유가 가능하며,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져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같은 중앙일보 방침에 대해 대다수 언론학자는 "한국 저널리즘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기대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간 같은 사실이 신문.방송 논조에 따라 180도 다른 방향으로 기사화되고 해석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장호순 교수는 "한국의 많은 언론은 객관성을 가장해 자기 의도대로 기사를 만들고 편집하는 게 문제"라면서 "이런 틀을 깨기 위해선 먼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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