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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0년 이상이면 전업주부 몫 50%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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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이혼’에 이어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갈라서는 ‘대입 이혼’이 늘고 있다. 1991년 도입된 재산분할 제도가 활성화한 뒤로 50세 안팎 중년들의 이혼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재산분할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이혼 부부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지난주에 문화센터에서 하는 ‘주부를 위한 회계’ 강좌에 등록했잖아. 숙제로 이걸 해오라고 하네.”
“그게 뭔데?”
“별 거 아니야. 재산 목록 작성. 좀 도와줄래?”

남편은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하나 둘 써내려 간다. 주택, 땅, 예금, 연금… 그리고 한달 뒤 아내는 이혼을 통보한다. 남편에게 날아온 이혼 소장(訴狀)에는 문제의 목록이 ‘재산분할 리스트’로 첨부돼 있다.

남편들이여, 너무 놀라지 말라. 우리나라 상황은 아니다. 미국에서 출간된 책 『바보들도 알 수 있는 이혼(Divorce for Dummies)』에 제시된 재산분할 청구 기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50대 초반의 전업주부 A씨는 지난해 소송을 냈다. 두 자녀가 성인이 되자 벼르고 별렀던 이혼을 결심한 것이다. A씨는 “남편은 결혼 24년 동안 가정과 자녀 양육을 등한시했고, 거액의 사채를 빌려쓰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지난 1월 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산 4억원은 아내 60%, 남편 40%의 비율로 나눠 갖도록 했다.
A씨는 60세부터 매달 40만~50만원가량의 노령연금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법은 이혼한 배우자에게 결혼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의 절반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법이 바뀌어 재혼하더라도 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

A씨처럼 이혼하면서 50% 이상의 재산을 차지하는 전업주부가 늘고 있다. 4, 5년 전 전업주부의 몫이 30%에 그쳤던 것과는 달라진 양상이다. 서울가정법원 홍창우 판사는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가사 도우미도 하나의 전문직이 됐습니다.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나 집에서 살림을 하며 자녀 양육을 하는 것 모두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판결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결혼생활 20년 이상이면 ‘재산의 50%는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공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맞벌이를 했거나 재테크 능력을 발휘했을 경우 인정되는 비율이 높아진다. 70~80%까지 챙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혼전문 변호사인 이상석 변호사는 “직장생활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 재산을 불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면 50% 선을 훌쩍 넘긴다”고 말했다. 그는 “재산 형성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지는 재산분할 원칙에 따라 주부가 부동산 투자를 잘 해서 재산을 몇 배로 늘렸다면 그만큼 분할 비율이 커지게 된다”고 했다.

직장인의 퇴직이 빨라지면서 퇴직 시점에 맞춰 이혼 소송을 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른바 ‘퇴직 이혼’이다. 최근 서울가정법원에서 벌어진 한 이혼 소송에서 퇴직금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통장에 있던 퇴직금 1억2000만원에 대해 남편은 “결혼 이전의 근무로 생긴 퇴직금은 재산 분할 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퇴직금 전부를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한다”고 결론 내렸다. 홍 판사는 “앞으로 퇴직금을 받을 것이란 개연성만으로는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지만 퇴직일과 퇴직금이 확정돼 있다면 재산분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성 쪽 재산분할 비율 확대가 중·장년층 이상의 ‘황혼 이혼’ ‘대입 이혼’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혼 이후의 삶은 어떨까.

먼저 남성의 경우. 50대 후반의 C씨는 지난해 아내와 갈라선 뒤 20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시가 7억원의 40평대 아파트를 팔아 절반으로 나눠보니 주거 공간이 반토막 난 것이다. C씨는 “집을 급매로 내놓아 제값을 받지 못했다”며 “소송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가는 바람에 예전 재산의 40%도 안 남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세간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생각지 못한 비용이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분노·수치심·죄책감·좌절감 같은 심리적 후유증 속에서 상당 기간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기도 어렵다.

여성 쪽도 불만이 많다. “재산 50%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부모가정연구소 황은숙 소장은 “이혼 여성은 그간 집안일만 해왔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데다 일자리도 많지 않다”며 “월급 같은 고정 수입이 꼬박꼬박 들어오는 남성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실제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이혼 후 여성 취업자 비율(82.8%)은 이혼 전(50.9%)보다 늘었으나 이들의 절반 이상은 임시 일용직이고, 월평균 근로소득도 100만원 이하에 그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이혼 전문가 캐럴 윌슨의 연구 결과 재산을 절반씩 나눠도 여성에게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살림과 육아에 매달리는 사이 남성은 직장생활을 통해 전문 기술과 경력처럼 보이지 않는 재산을 형성하는데, 이런 공동재산이 남성에게만 귀속된다는 것이다. 재산세 등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감안하지 않고 살던 집을 계속 보유하려는 여성들의 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에게 유리한 구조다. 황 소장은 “30~40대 이혼 여성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지만, 50대 후반의 건강한 여성이라면 육아 도우미를 하며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성한 자녀도 아빠보다는 엄마 쪽에 동정적이어서 용돈 받으며 마음 편히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상석 변호사는 “양쪽 다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혼 생활을 더 못 견뎌 하는 것은 남자 쪽”이라면서 “현재의 결혼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석천 기자 sc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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