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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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상도 사투리로 「닭」을 「달」이라 한다.한편 하늘의 「달」은 고대어로 「다라」라 불렸다.그렇다면 아주 옛날 경상도 일대에선 「닭」도 「다라」 또는 「달구」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등의 설화(說話)를 보면 용은 대체로 가야나가야계 인물(또는 가야의 전신인 부족국가나 그 나라 인물)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낙동강을 용으로 비유하려 했던 것일까.
이 낙동강 왼쪽,즉 서편에 일찍이 높은 제철(製鐵)기술을 지닌 다라국(多羅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요즘의 경상남도 합천(陜川) 언저리에 위치했다.여기에는 「다라리(多羅里)」라는 이름의 마을이 지금도 있다.고대의 철기유물이 대량 출토된 옥전(玉田) 고분군의 고장이다.「닭」을 뜻했을 옛말 「다라」는 이고장 이름 「다라」와 소리가 같다.「계룡(鷄龍)」은 혹시 낙동강변의 다라국을 가리킨 은유(隱喩)였을지도 모른다.「다라」「달구」는 「달아오른다」는 뜻의 「달아 」「달구」와 소리가 같다.
제철 야장(冶場)을 지칭한 말이다.
다라국은 낙동강 왼쪽의 큰 지류 황강(黃江) 갈피에 있었다.
알영왕비가 계룡의 왼쪽 갈비에서 태어났다는 기술은 그녀가 다라국 출신임을 의미한 것은 아닌지.
닭은 새다.「새」는 「쇠」와 소리가 비슷하다.「쇠」의 옛말은「새」「사」「소」「쉬」등으로도 불렸다.그러니까 「새 부리」는 「쇠 부리」에 비겨진다.「쇠 부리」란 「쇠부리꾼」,제철 및 철기제조 기술자를 가리킨다.알영왕비는 다라국 쇠부 리 왕의 공주였던 것일까….
서여사는 『삼국유사』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에 관한고사(故事)를 이렇게 해석했다.그럴 듯했다.
『고대의 설화가 사실(史實)로 선히 떠오르는 것같습니다.참 재미있는데요.』 아버지가 아주 흥미로워한다.
『더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서여사는 『삼국유사』의 수로부인(水路夫人) 대목을 펼쳐 보였다.
『알영왕비도 아름다웠다지만 이 수로부인은 가위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여인이었던 것같애요.매혹적인 미인이었나 봐요.
강릉(江陵) 태수(太守)가 된 남편이 경주에서 임지로 부임하는도중에 여러차례 뭇남자들에게 납치당했거든요.』 『납치됐다가 돌아온 게 신기하네요.』 아리영이 궁금해 했다.
『그러게 말이죠.납치해간 그 인물의 면면이 또 재미있어요.여기에도 용이 나타나지요.하지만 제일 흥미를 끄는 인물은 노인이에요.이 사람은 납치자는 아니고 소를 끌고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었습니다.「저 깎아지른 산 위 벼랑에 핀 철쭉꽃 을 꺾어서 내게 줄 자가 없는가」라고 한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얼른 꽃을꺾어 노래와 함께 바쳤다는 거예요.이 노래가 「노인헌화가」라는유명한 신라 향가(鄕歌)지요.』 겉으로 보기엔 꽃을 꺾어 바치겠다는 평범한 노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심상치 않은 구애(求愛)의 노래 같다며 서여사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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