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실 해체 의미 “경영방식 180도 바꾸겠다는 확실한 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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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브레인’ 역할을 해 온 전략기획실이 5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삼성 임직원들은 전략기획실 해체를 이건희 회장의 퇴진만큼이나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삼성전자 등 59개 계열사와 임직원 25만 명에게 그룹의 방향타를 제공한 막강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전략기획실은 그룹 총수가 중차대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는 컨트롤 타워였다”며 “이를 없애기로 한 것은 그룹 경영방식을 180도 바꾸겠다는 확고한 의지”라고 설명했다.

전략기획실은 고 이병철 회장이 1959년에 만든 비서실이 모태다.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효과적으로 그룹을 관리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했다. 장기 비전과 경영 전략을 제시하고 그룹 경영진 인사를 하는 게 주 업무였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대기업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면서 98년 4월 비서실이 폐지되고 ‘구조조정본부(구조본)’가 생겼다. 한시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그룹 전체의 신사업 관리부터 계열사 경영진단까지 맡게 되자 비서실과 다름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구조본은 2006년 3월 기능을 축소해 지금의 전략기획실이 됐다.

이학수 부회장이 전략기획실장으로 조직을 총괄했다. 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해 82년 비서실로 옮긴 이 부회장은 97년부터 비서실장·구조조정본부장을 거쳐 전략기획실장까지 자리를 지켜 ‘삼성의 2인자’로 불렸다. 이 부회장을 전략지원팀·기획홍보팀·인사지원팀이 떠받쳐 왔다. 김인주 사장은 돈줄(재무)과 사정 권한(감사)을 쥔 전략지원팀장을 맡았다. 장충기 부사장은 기획홍보팀, 정유성 전무는 인사지원팀을 이끌었다. 구조본 시절 1실5팀149명이던 것이 3팀99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재무·인사·감사 등 핵심 기능은 유지해 왔다.

전략기획실의 역할에 대해서는 명암이 공존했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의 하나다.” “법적 근거가 불확실한 계열사 통제 조직이다.” 이렇게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렸다. 긍정론은 해외에서 더 힘을 얻었다. 교토가쿠엔(京都學園)대학 경영학부의 하세가와 타다시(長谷川 正) 교수는 2006년 7월 일본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삼성이 소니 등 일본 기업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것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전략기획실을 통한 재벌 시스템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2000년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되면서 세계 전자업계가 움츠리는 상황에서도 삼성은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등에 집중 투자해 4년 뒤인 2004년 대호황의 과실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략기획실 해체로 과감한 투자 결정 등 그간의 순기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연유다. 당장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을 둘러싼 계열사 간 힘겨루기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이학수 부회장은 “계열사들의 독자 경영 역량이 커졌고 이수빈 회장을 정점으로 사장단 회의에서 협의하는 기능이 있어 큰 혼선은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장단협의회의 모체는 ‘수요회’다. 삼성은 매주 수요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계열사 사장단 모임을 해 왔다. 그러나 투자계획 등 그룹의 실질적 경영계획은 전략기획실이 이끄는 ‘전략기획위원회’에서 담당했다. ‘9인회’로 불리는 이 모임에는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이외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 주력사 경영진이 참여해 왔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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