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시대명음반>바흐 칸타타 BWV82"나는 만족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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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위대함이란 단순함이며 자연스러움이다.가공의 아름다움이 제아무리 현란하고 교묘하다 해도 자연 자체의 진지한 아름다움 보다 뛰어날 순 없다.한스 호터(86)가 금세기 여러명의 바리톤 가수중 가장 위대한 가수로 기억돼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노래속에 참된 남성적인 기품과 묵묵한 아름다움을 불어넣었고 무엇보다 노래하는 모든 내용을 철저히 자신의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오게 할줄 아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가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떤 내용의 노래라도 가식의 그림자와는 거리가 먼 진지함과 자연스러운 삶의 깊이를 가득 실어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이 음반에 담긴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곡에서 삶의 어두움과 죽음의 평화로운 안식을 너 무도 선명하고 또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같은 곡을 연주한 피셔 디스카우가 정확한 표현을 위해 치밀한계획아래 정교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칼 리히터 지휘,아르히브)과는 대조적이다.연주 자체가 삶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백여곡에 이르는 바흐의 교회칸타타 중 가장 어둡고 인간적인고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걸작 「BWV 82」는 베이스 독창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흔히 「베이스 레퀴엠」이라 부르는작품.호터의 어둡고 깊이있는 목소리는 아무런 기교도 없는 듯하지만 실제로 무한히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지휘 앤터니 버나드)와의 이 녹음은 같은삶의 깊이를 담고 있다고 평가되는 존 셜리커크의 연주(네빌 마리너 지휘,데카)나 피셔 디스카우의 51년 녹음(칼 리스텐파트지휘,아르히브)을 훨씬 능가한다.
함께 수록된 브람스의 마지막 작품 『네개의 엄숙한 노래』(피아노 제럴드 무어)도 삶의 온갖 체험과 관조가 스며있는 절창(絶唱)이다.그 담담하고 과묵한 아름다움은 어둡고 풍부한 정서를지닌 알렉산더 키프니스의 36년 녹음(EMI)과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결코 퇴락하지 않는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EMICDH 763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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