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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석유값 급등이 세계 식량난 불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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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제 곡물값이 치솟으면서 식량난이 지구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3월 현재 세계 곡물 재고율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정한 식량위기 수준(16%) 이하인 14.6%로 떨어졌다. 곡물 가격도 2006년에 비해 밀은 2.76배, 콩은 2.16배, 옥수수는 2.29배로 뛰었다. 곡물 공급량도 크게 줄었다. 중국·러시아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이 자국의 곡물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수출세 인상, 수출량 할당 등을 통해 수출을 제한해서다.

최근 한두 달 동안 필리핀·태국·이집트 등 일부 국가에서 식량위기로 인한 폭동 사태가 발생하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적인 식량 부족 문제가 비상사태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 식량 사정도 그리 넉넉한 건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5.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29개국 중 26위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식량확보를 중요 국가 과제로 규정하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 해외에 식량기지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식량 위기 왜 발생하나=국제 곡물 공급량이 수요량을 따라가지 못해서다. 공급 부족분을 재고량으로 충당한 결과 지난해 세계 곡물 재고량은 2000년도에 비해 절반(45.6%) 정도로 감소했다.

세계적으로 곡물 수요가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화석 에너지 고갈 위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명환 선임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옥수수 같은 곡물을 활용해 생산하는 ‘바이오 연료’ 수요가 커졌다”며 “기존의 곡물 용도가 식용과 사료용이던 것에 에너지용이 추가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 바이오 연료의 43%를 생산하는 미국은 옥수수 소비량의 14%를 에탄올 생산에 사용한다. 2017년 후에는 30% 이상을 에탄올 원료로 쓸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유가 상승에 따라 곡물 생산·운송비가 늘어난 것도 식량위기를 가중시키는 데 한몫했다. 옥수수 100kg을 생산하는 데 약 5L의 석유가 소비된다는 분석도 있다. 잦은 가뭄·홍수에 따른 물부족 현상도 식량위기를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미국 달러화 약세, 금리 인하로 투자펀드가 곡물시장에 유입돼 가격을 끌어올렸다.

◇어떤 영향 끼치나=곡물 가격 상승은 식료품비를 포함해 전체 소비자 물가 인상을 유발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가져온다. 이런 경우 소비자 가운데서도, 특히 생계비 중 엥겔계수(가계 지출비용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높은 서민층이 큰 타격을 받는다. 축산 농가도 곡물 사료값이 올라 피해를 본다. 비싼 곡물 대신 유전자변형식품(GMO)이 널리 유통될 경우 식품 안전성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

곡물값 상승은 세계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미국·호주 등 곡물 주요 수출국의 농가 소득은 는다. 미국의 경우 2007년 순농업소득이 870억 달러로 과거 10년 평균에 비해 50% 증가했다. 반면 식료품을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나라는 큰 타격을 받는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개리 베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식량 가격이 3분의 1이 오르면 부자 나라는 생활 수준이 3% 하락하는 데 그치는 반면 가난한 나라는 20%까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해결하나=국내 곡물 생산을 늘리기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겨울에 ‘놀리고’ 있는 농경지에 호밀 같은 겨울철 재배 곡물을 심는 이모작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토종 씨앗을 개발하는 것도 식량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꼽힌다.

성진근 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은 “식량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곡물의 수출 경쟁력이 있고 내수시장도 있는 해외에 식량기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칫 해외 식량기지에서 생산된 곡물이 고스란히 우리나라에 들어와 국내 농산물과 경쟁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유통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 곡물시장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세계적 ‘곡물 메이저’를 육성해야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위기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가 적극 나서서 곡물 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식량난을 겪고 있는 나라에 긴급 원조뿐만 아니라 생산기반 시설을 마련해 줘야 식량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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