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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 탄핵갈등 부추기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우리의 탄핵 정국을 틈타 내부분열을 부채질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4일부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과 언론 보도를 통해 "남조선 인민들은 미국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야당들의 불법 비법 행위를 배격하라"는 등 대남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왜 남쪽의 국내사정에 이렇게 '감 놓아라, 배 놓아라'고 간섭하는지 그 뜻을 모르겠다. 이는 분명히 기존의 남북 합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다.

북한은 탄핵을 '전대미문의 의회 쿠데타' '민심에 칼을 박은 추악한 정치반란'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우리의 특정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다른 세력에겐 타격을 가해 우리 사회를 흔들어보려는 속내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도는 남측 사회에서 또 다른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평양의 지도부는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아직도 한국의 사정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서울 시내에 탱크가 진주한 것도 아니고 폭력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도 않다. 대부분의 남측 국민은 생업에 묵묵히 종사하고 있다. 이미 남쪽은 북한이 생각하는 것 같은 남쪽이 아니다.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고, 탄핵이 됐다 하여 나라가 흔들리지도 않는다. 북한은 남쪽의 그런 저력을 이 기회에 오히려 깨달아야 한다. 남쪽 사회의 이러한 민주주의와 다양성에 대해 겸손히 본받을 수는 없는가. 북한이 이런 식으로 나가면 남북 간의 경협도 순조로울 수 없다. 한국 국민 사이에 "북한을 애써 지원하면 뭐하나. 저렇게 우리를 흔들려고만 하는데"라는 반감이 확산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은 "남측 정국이 불안하다"며 파주에서 열기로 했던 청산결제실무협의 장소를 개성으로 하자는 요구부터 철회해야 한다. 정부가 이 제의를 거부한 것은 잘한 일이다. 과거처럼 처음에는 강하게 나가다 슬며시 북한의 요구에 응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특히 원칙에 입각해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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