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에 껄끄러운 문제는 일단 피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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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한국시간) 한·미 양국 정상의 공동 언론회동 전 김윤옥 여사<中>가 로라 부시<左>, 라이스 미 국무장관<右>과 담소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20일(한국시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핵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및 이라크 파병 지원 등 한국 정부에 곤란한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 후 열린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부시 대통령이 “본국에 가서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문제는 얘기하지 말자”고 했다는 얘기도 소개했다.

정상회담에 수행한 정부 당국자도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친구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리트머스(시험지)는 아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당초 미국은 ▶PSI 전면 참여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이라크 파병 연장 ▶미사일방어(MD) 체제 참여 ▶주한미군 방위비 증액 등의 ‘쇼핑 리스트’를 한국에 제시하며 ‘전방위 압박’을 가해 올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 언론회동 자리에서 “한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레바논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 같은 ‘민감성’ 현안들은 실제 회담장에선 원론적 수준의 언급에만 그친 채 심도 있게 논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이 같은 문제들이 본격 논의되지 않은 데 대해 미국이 일단 첫 정상회담에 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상회담 직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을 타결 지은 것을 제외하면 한국이 부담을 가질 만한 의제들을 본격적으로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문제는 후속 실무협의에서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가령 주한미군의 방위 비용 분담 문제는 현행 제도를 개선한다는 원칙은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양국은 현재 42% 수준인 한국 측 부담을 50%로 늘리는 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21세기 전략동맹’의 구체상을 그리는 실무 협의도 기다리고 있다. ‘전략동맹’이란 대원칙에 합의한 이상 미국 측이 그에 합당한 여러 가지 실천사항을 요구해 올 수 있다. 또 5월 말께로 예상되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껄끄러운 사안들을 미국 측이 제기해 올 가능성이 있다.

글=예영준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FTA

쇠고기 걸림돌도 제거
“미, 5 ~ 6월 비준안 제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올해 발효될까.

이명박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일 공동 언론회동에서 “한·미 FTA의 연내 비준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지부진했던 양국의 비준 절차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부시 대통령은 “쇠고기 시장을 개방한 한국이 고맙다”며 “올해 안에 한·미 FTA 비준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한·미 FTA에 대한 미 의회의 비준을 가로막아 온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된 걸 언급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미국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FTA를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는 이를 연내에 비준해야 하며 미 의회에 계속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도 했다. 한·미 FTA 비준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였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할 때 미 행정부가 늦어도 5~6월 초에는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조만간 미 의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조직적인 로비가 미 업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연내 비준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AP통신은 이날 “민주당과 자동차 업계의 반대가 여전히 강하고 의회의 캘린더에도 시간 여유가 없는 만큼 FTA 비준 문제가 미국의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쪽 상황은 나은 편이다. 17대 국회가 임기 마지막 달인 5월 중 FTA에 대해 논의키로 한 데다 통합민주당의 일각에서 “한·미 FTA가 노무현 정부의 성과인 만큼 표결엔 응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설령 18대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한나라당(153석)을 포함, FTA에 긍정적인 보수 진영이 200석이 넘는 상황이어서 처리 자체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미 의회 일각에서 요구하는 자동차 부문 재협상에 대해선 ‘불가’란 선을 그었다. 그는 특파원 간담회에서 “자동차 문제는 FTA 협상 과정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끌었던 문제”라며 “이제 (FTA와 관련한) 다른 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고정애 기자



전략동맹

군사동맹서 ‘정치·경제동맹’ 으로
테러·환경도 공동대응
경제적 상생 구조 마련

새 정부의 한·미 관계 좌표는 ‘21세기 전략동맹’으로 확정됐다. 기존 한·미 동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기반한 ‘군사동맹’이었다. 동맹의 핵심 목표도 ‘한반도 평화 유지와 한국의 안보’에 집중됐다. 20일 한·미 정상이 발표한 전략동맹은 기존 한·미 동맹의 시야를 전 세계로 넓히고, 동맹이 하는 일도 대테러(민주주의 수호), 환경, 인도적 지원, 시장경제 구축과 같은 21세기형 과제로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각종 정치적·사회적, 때로는 군사적인 ‘민주주의 수호와 시장경제 유지 활동’에 한국의 참여 폭이 늘어나는 ‘정치·경제동맹’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미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경제적 상생 관계로 엮이는 것도 포함된다. 부시 대통령은 공동 언론회동에서 전략동맹을 “핵물질 확산을 방지하고 어린이들에게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아주 자유롭고 공평한 무역환경을 제공해 번영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엔 전략동맹이라는 큰 틀만 발표하고 7월 부시 대통령 방한 때 이를 구체적으로 문서화할 예정이다.

관건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정치적·군사적 활동에 대해 한국이 어느 선까지 참여하는가의 문제다. 또 다른 과제는 한·중 관계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지난 정부의 외교 중심축은 중국이었고, 미국과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사안별로 협력하는 전술적 관계였다”며 “전략동맹에 수반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한·미·일 삼각동맹 복원에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라고 지적했다.

채병건 기자



북한문제

‘북핵 철저 검증’ 대북공조 재확인
미국‘남북관계 무시 말라’북한에 메시지

한·미 정상은 회담에서 ‘대북 공조’를 재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 언론회동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의 ‘비핵·개방·3000 구상’을 포함해 한국의 대북 정책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은 북핵 불용 원칙을 천명하며 북핵 신고에서의 철저한 검증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 신고가 불성실하면 먼 훗날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생각을 부시 대통령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회담으로 미국이 북한에 남북 관계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우회 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북한이 대화 상대를 미국으로만 제한하고 남한을 소외시키려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차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장 한·미 양국은 22일 방북하는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일행을 통해 북한에 철저한 신고·검증을 촉구한다. 미측은 북한에 ▶플루토늄 추출량 ▶관련 핵시설 가동일지 ▶핵 시설 목록 등을 모두 신고 내용에 포함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확산 의혹과 관련해서도 ▶이들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에 대한 분명한 해명과 검증 수용 ▶추후 재발 방지 보장을 요구할 예정이다.

향후 남북 관계는 북핵 신고·검증과 함께 새 정부를 향한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이 방미 중 대화 의지를 밝혔지만, 북한이 곧바로 호응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는 게 다수 대북 전문가의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당분간 남북 관계 단절의 원인을 새 정부에 돌리며 미국과는 대화를 계속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군사분야

주한미군 2만8500여 명 유지키로
미국에서 무기 살 때
한국 지위 격상 추진

미국은 올해 말까지 주한미군 3500명을 감축하려던 계획을 바꿔 현 수준인 2만8500여 명을 유지키로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통해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분명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이 요구해 온 대외군사판매(FMS)에서의 구매국 지위 격상도 추진하겠다고 확약했다. 한국은 미국에서 무기를 살 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1그룹)나 ‘나토+일본·호주·뉴질랜드’(2그룹)가 아닌 3그룹으로 간주돼 불이익을 받았다. 1·2그룹은 일반 군사장비의 경우 1억 달러 이상 구매할 때만 미국 의회의 심의를 받고 심의 기간도 15일이 넘지 않는 반면 한국은 5000만 달러가 넘으면 일일이 미 의회 심의를 거쳐야 했다. 심의 기간도 최대 50일이 소요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첨단 무기는 대체로 이들 국가에 먼저 도입되고 한국은 다음 순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사 분야엔 향후 한·미가 까다롭게 따질 현안이 널려 있다. 한·미 전략동맹의 뒷면엔 미국이 추진하는 대테러전에서 한국군의 역할 확대가 숨어 있다.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등 미국 측이 분쟁 지역에서 한국이 실질적 기여를 해 달라고 강력히 요구할 가능성을 정부 당국자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반도 붙박이군’이었던 주한미군도 숫자는 줄지 않는 대신 ‘동북아 기동군’으로 성격이 바뀌면 정부로선 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예컨대 주한미군 2사단 내 아파치 헬기 부대는 당장 이라크·아프간에서 활용 가능한 전력이다. 이런 기동 전력이 수시로 한반도를 들락날락할 경우 이를 보충할 대체 전력을 한국군이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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