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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우주인, 내가 뿌린 씨가 꽃 핀 거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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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경철 박사는 “전쟁 중에 군생활을 마친 것과 평생 천문학을 한 것이 인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두 가지”라고 말했다. [사진=강정현 기자]

“우하하하하, 감회가 남다르죠.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내가 이 땅에 우주과학의 씨를 뿌렸는데 이소연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주인이 됨으로써 꽃이 핀 거잖아요. 남의 로켓으로 올라갔다지만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가 사람 올려보낼 로켓을 만들려면 30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기다려. 이제 중국·일본 따라잡는 거죠. 앞으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요.”

조경철(79) 박사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호탕했다. 호쾌한 목소리로 1969년 아폴로11호의 달 착륙 생중계를 맡아 ‘아폴로 박사’로 불리는 그는 한국 우주과학의 산 증인이다.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의 귀환을 하루 앞둔 18일 그를 만났다.

그는 최근 건강이 나빠져 병원을 오갔다고 했지만 우주 얘기가 나오자 금세 기운이 넘쳤다. 69년 아폴로11호의 달착륙 생중계를 맡았을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엄청났지. 그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했을 정도였다니까. 인류 최초의 일인데 특파원은 못 보내고, 내가 AFKN을 동시통역하면서 해설했어요. 남산에 큰 스크린도 만들었지. 달에 가는데 사흘, 돌아오는데 사흘, 근 일주일을 붙잡혀서 수염도 못 깎았어요. 7월 21일 달에 딱 발을 딛는데, 아이구 너무 좋은 거야. 만세를 부르다가 그만 뒤로 나가떨어졌지. 우하하하. 내가 좀 다혈질이라 그래. 하하하.”

그는 연세대 전신인 연희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미국 유학을 떠나선 정치학으로 외도를 했다. 그랬던 그가 천문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스승 이원철 박사 덕분이다. 국내에서 천문학으로 처음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던 이 박사가 “네가 꼭 천문학을 해야겠다”는 편지를 보내는 바람에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천문학을 공부, 6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처음엔 천문학과가 파리를 날렸어요. 그런데 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쐈어. 바로 사람들이 밀려오고 스타 학과가 됐어. 내가 박사를 마치자 너도나도 데려가겠다는 거야. 열흘 만에 영주권이 나오더라고. 미 해군 천문대와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일하다 68년 귀국해 연세대 교수가 됐지.”

조 박사가 대중과 더욱 가까워진 것은 90년대 후반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출연하면서다. UFO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에 속아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의 우주과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깜쪽같이 속았어. 다짜고짜 전화해서 여의도에 UFO가 내려왔다는 거야. 그래서 갔더니 순경들이 총 들고 서있고, 잔디가 시커멓게 타 있잖아. 긴가민가 하는데 뭔가 어슬렁어슬렁 나와. 어이쿠, ET(외계인)가 기어올라오고 있어.”

그 덕에 조 박사는 연예인 못지 않은 스타 과학자가 됐지만 학계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교수들이 씹는 거지. 그래서 내가 책을 많이 낸 거야. ‘그럼 넌 책을 몇 권 썼냐’고 반문할 수 있잖아. 방송에만 나가고 수업과 연구를 등한시한다면 내가 할 말이 없지.”

그렇게 열심히 쓴 책이 180권이나 된다. 다음달에도 화성에 관한 신간이 나온다. “매일 원고지 10장씩, 술 먹을 일이 생기면 다음날 것까지 20장을 해치운다”고 한다. 그의 목표는 200권을 채우는 것이다.

“(몸이) 많이 고장났다”면서도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강의, 일본 자동차 잡지 기고 등 활동이 왕성하다. 내년 4월에는 강원도 화천군에 그의 이름을 딴 ‘조경철 천문과학관’이 문을 연다. 소장한 자료와 책을 모두 기증할 것이라는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드는 과학관 가운데 가장 크다”며 “노력하는 사람은 보람을 느끼기 마련”이라며 뿌듯해 했다.

그의 호는 외로운 별, ‘고성(孤星)’이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부터 천문학 박사가 나 밖에 없어 외로웠잖아. 맨땅에서 시작해서 한국인 우주인까지 탄생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겠어.”

한국에서 외로운 별로 40년. 자신을 보며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을 어린이가 자라 우주인이 됐다.

“우하하하하. 이왕이면 사람이 남에게 호감을 주는 게 좋잖아요. 나는 학자라고 무게 잡는 게 제일 보기 싫어.”

이처럼 소탈한 조 박사가 있어 머나먼 우주와 별이 대중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졌을 터다.

글=홍주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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