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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미국 상륙' 40년… 고향 英 리버풀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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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 음반과 사진 등을 파는 비틀스 가게(左)와 앨버트 독에 있는 비틀스 박물관인 ‘The Beatles Story’.

▶ 1964년 미국 CBS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던 모습. 사진 왼쪽부터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조지 해리슨.존 레넌.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는 '비틀스 이전'과 '비틀스 이후'로 나뉜다." 전세계에 끼친 비틀스의 인기와 절대적인 영향력을 이만큼 잘 표현하고 있는 말도 드물다. 올해는 영국 리버풀 출신의 4인조 그룹 비틀스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점령한 지 40년이 되는 해.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 40주년을 맞아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을 찾아봤다.

#1964년 2월

"1964년 2월 9일이었다. 우연히 영국 그룹 비틀스가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진에는 가발을 쓴 것 같은 네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TV를 보았다. 그곳에는 4백여명의 학생이 있었다. 잠시 후 비틀스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부르자 우리는 감전이라도 된 듯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너나없이 '그래 이거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록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는 비틀스가 미국에 첫선을 보이던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며칠 뒤 비틀스가 CBS의 에드 설리번 쇼에 두번째 출연했을 때 시청률이 사상 최고인 72%에 달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리버풀에서 온 네 명의 더벅머리 젊은이는 단숨에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64년은 비틀스의 해였다. 그들이 가는 곳은 몰려든 수천명의 소녀가 경찰 저지선을 무너뜨리기 일쑤였다. 3주 만에 25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팔려나갔다. 4월 4일에는 비틀스의 노래가 순위의 1위부터 5위까지 휩쓸었고, 미국 음반 판매의 60%가 비틀스 음반이라는 기록도 나왔다.

#2004년 3월

2004년 3월 비틀스를 낳은 영국 북서부의 항구도시 리버풀은 조용했다.40년 전의 미국 점령을 축하하는 일은 오히려 당시 '점령당했던' 나라 미국에서 더 요란한 듯하다. 64~65년 비틀스 출연분을 담은 에드 설리번 쇼가 DVD로 발매됐고, 비틀스 최초의 영화가 재상영됐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서 이들의 흑백 사진 전시회가 열렸는가하면 '비틀스가 온다! 미국의 비틀매니어의 탄생'이라는 책이 출판되고 심포지엄도 열렸다.

비틀스의 따뜻하고 발랄한 노래를 기대하며 찾아간 손님에게 리버풀은 무뚝뚝한 주인장 같았다. 도시를 낮게 뒤덮은 무거운 구름, 습기를 머금은 싸늘한 공기, 18세기 해상교역으로 누린 번영의 흔적을 이제는 초록빛 이끼로만 추억하고 있는 건물들…. 그러나 그 '무뚝뚝한' 거리 구석구석에 시시콜콜한 비틀스 이야기가 익숙한 습기처럼 스며있다.

존 레넌이 태어났다는 조산원(지금은 대학 기숙사)을 비롯, 전설의 그룹 멤버들의 생가(生家)치고는 소박하다못해 초라한 집들, 그들이 다녔던 학교, 무명시절 연주했던 클럽, 심지어 존 레넌의 부모가 처음 연애를 시작했다는 공원과 레넌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거리까지…. 리버풀은 도시의 몸 전체로 비틀스를 기억하고 있었다. 비틀스가 '팝의 신(神)'이라면 그들을 탄생시킨 리버풀은 생생한 전설을 간직한 성지(聖地)였다. 그들이 노래한 거리 'Penny Lane'과 고아원 'Strawberry field'도 빛바랜 모습으로 그대로다.

가장 애틋한 향수를 자극하는 곳은 매튜 스트리트에 자리잡은 캐번클럽(Cavern Club)과 앨버트 독에 있는 비틀스 박물관 '비틀스 스토리'(The Beatles Story)다.

캐번 클럽은 비틀스가 가장 많이(61~63년, 275회) 공연한 곳이고 열광적인 비틀스의 팬, 즉 '비틀매니어'가 시작된 곳이다. 어두컴컴하고 냄새 나는 볼품없는 지하창고 자리이지만 객석에서 손바닥만한 무대를 바라보는 팬들은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이 클럽은 비틀스 박물관에도 재현돼 있다. 클럽 안의 불빛, 술잔을 든 이들의 실루엣, 떠들썩한 웅성거림, 소녀들의 눈물 젖은 환호, 어디선가 들려오는 'Yellow Submarine''She Loves You' 등 귀에 익숙한 그들의 노래. 이만큼 친근한 성지가 어디 또 있을까.

멋모르는 관광객에게는 별 재미없는 건물과 공원만 보여주는 반면 비틀매니어에게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도시, 리버풀. 비틀스 신화가 끝나지 않는 한 리버풀 성지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리버풀=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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