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열며>희년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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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난히 무덥고 짜증스러운 8월을 보내면서 애꿎은 부채만 요란하게 휘둘러 본다.
지난 7년동안 한국의 교회만이 아니라 북한의 조선기독교도연맹산하의 교회들과 더불어 온세계 교회들이 1995년을 희년(禧年)으로 정하고 매년 8월에 한가지로 기도소리를 높여왔건만 지금우리는 별다른 기쁨도,감격도 없이 달력 한장을 또 떼려 하고 있다. 희년은 본래 히브리 말에서 음역(音譯)한 것이지만 그 뜻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그것은 애급에서 노예살이하던 히브리백성들이 마침내 해방이 되어 홍해를 건너 새 천지를 향해 떠났던 그 감격과 은혜를 50년이 지나 다시 한번 회복하 기 위한제도적(制度的)개혁에서 비롯됐다.
이런 뜻에서 본다면 희년은 단순히 50년전 해방의 기쁨을 돌이켜보면서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틀을 짜서 진정한 해방의 역사를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50년전 해방의 감격은 비록 그것을 몸으로 겪어보지 못했던 세대들에게도 그 핏줄 속에 이어져 왔다.1945년 8월6일, 소위 「작은 소년」이란 제법 귀여운 이름이 붙은 원자폭탄이 새벽하늘을 가르면서 히로시마를 불과 폭풍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초토화시켰을 때 놀란 것은 일본(日本)만이 아니라 온 세계 모든나라들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1945년 7월16일 첫 원폭실험을 한 이후 불과 20여일만에 일시에 20만명을 죽이면서미국은 가공할 힘의 나라로 떠오른 것이다.오늘날 미국의 원폭사용이 정말로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기 위한 불가피 한 결정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그 원자폭탄의 위력이 세계 평화를 위해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그것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 온세계가 동서냉전구조 속에서 시달리며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원폭을 앞세운 군사력의 공포였다.
원자폭탄 앞에서는 승자(勝者)도 패자(敗者)도 없었다.그런데「그 이후」50년이 지난 오늘 희년에 바로 옆의 나라인 중국(中國)은 5월에 이어 지난17일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했고,제2차세계대전 승전국의 하나인 프랑스도 남태평양 지하 에서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바로 지난 4월 세계 여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한 연장에 합의하고 서명하지 않았던가.
희년은 그 전통에서 그러하지만 단순한 선언이나 기념이 아니다.더구나 그것은 종교의 의례적 행사도 아니다.
희년은 진실로 자유와 해방,창조질서의 회복과 새로운 관계의 설정,그리고 어느 계층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천부의 평화를 지키려는 개혁이다.그런데 지금 세계는 거꾸로 가고 있지 않은가.여전히 우리 앞에 핵의 위협과 군사력을 앞세운 공포 감으로 힘의논리를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8.15 광복절.그 뜨거운 뙤약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세종로 그 넓은 길을 메우고 지켜봤던 기념식은 과연 무엇이었는가.옛 조선총독부의 지붕 꼭대기에 상투처럼 위압을 주던 그 첨탑을 잘라내 끌어내린 것으로 과연 희년은 오는 것인가.짓 눌렸던 감정이 풀리는 후련함이 있었을는지는 모르지만 일제의 잔재를 진실로청산하고 해방을 이루려면 우리는 먼저 평화를 위한 대행진을 시작했어야 옳았다.
그것은 희년을 역행(逆行)하는 핵실험은 물론 온세계에 독버섯같은 구름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핵무기의 폐기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희년을 한스러운 감정과 서슬퍼런 남북의 대결 속에서 여전히 핵무기에 둘러싸여 보내고 있지 않은가.
〈성공회大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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