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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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20) 돌다리를 건너면 있다던 집,미치코가 내려와 살고 있다던 그 집이 저쯤의 어디는 혹시 아닐까.자신을 집에 부르고 싶다는 미치코의 말을 들었을 때지상은 처음으로 어쩌면 그녀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온것 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난간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지상은 흘러가는 물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개울 양 쪽으로 쌓은 돌축대에는 이끼가 검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어디 있나 했지.』 등뒤에서 길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벌써 온 거냐.미안해.기다리다가 이쪽 다리가 이쁘기에 와서 보던 길이다.』 『돌다리가 이쁘다.』 지상의 말을 흉내내면서 길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다운 소리로구나.』 『내가 어때서.』 『나하고는 틀린 거같아서 하는 소리다.난 여기 오기 전에는 조선에서 돌다리를 거의 본 적이 없었거든.그게 차라리 신기했는데 넌 다리를 보고 이쁘다니까 하는 말이다.』 『이쁜 거야 이쁘다고 해야지.』 『다리를 보고 이쁘다는 사람을 난 처음 보거든.세상에 이쁜 거는여자 밖에 없는 줄 알았으니까.』 길남은 지상을 데리고 돌다리를 건넜다.골목이 좁아졌다.그를 따라가면서 지상이 물었다.
『갔던 일은 잘 되고?』 『와이로 주는 일인데,잘 되고 말고가 어디 있냐.』 지상이 물끄러미 길남을 바라보았다.
『세상 어디라고 썩은 놈 없겠냐.어디 가나 그런 놈,저런 놈,맑은 놈,썩은 놈 섞여 사는 데가 세상이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려놓고 나서 길남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면서 말했다.
『너 오늘 나랑 술이나 한잔 하자.』 『술,술이야 할 줄도 모른다만,요즘이 어떤 땐데 어디가서 술을 먹냐.』 『따라만 와.사실은 그래서 널 데리고 나온 거니까.전시니 공습이니 하지만있을 건 그래도 다 있다.계집이라고 없을까.사내들이 다 전쟁에나갔으니 남아있는 계집이야 깔렸지.』 껄껄거리고 웃으면서 앞서걷는 길남의 뒷모습을 지상은 낯설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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