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한국미술 붐-李仁範(前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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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근래들어 일본미술계는 그동안의 서구편향에서 아시아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한국미술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한국현대미술전을 열고있는 일본 미토(水戶)시 미토예술관이 지난달 30일개최한 『포럼-한국의 현대미술』에 참가하고 돌아 온 이인범(李仁範)씨가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국미술붐을 소개한다.[편집자註] 최근 2~3년간 일본에선 한국현대미술,아시아미술의 바람이 거세다.
이달만 해도 미토예술관에서 한국의 젊은 작가들로만 구성된 『마음의 영역』(부제:「1990년대의 한국미술」7월21일~10월10일)전과 함께 한국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포럼이 열렸고 아이치(愛知)문화센터와 나고야(名古屋)시립미술관이 공 동으로 한국과 일본작가를 초대한 『환류전』(7월14일~9월3일)이 열리고있다. 또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사이타마(埼玉)현립미술관을 필두로 『조선왕조시대의 자수와 보자기전』(8월12일~9월12일)이 오사카(大阪)등 4곳에서 순회전시될 예정이다.일본 유수의 미술관에서 최근 열리고 있는 한국미술전시들은 재작년이래 일본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한국작가전의 뒤를 이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설치작가 육근병(陸根丙)씨가 2년전 파나소닉빌딩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시세이도 (資生堂)갤러리기획 『아시아 산보(散步)전』에의 문주씨 초대,도예작가 원경환씨의 소게츠(草月)미술관 작품설치,그리고 아시안게임에 맞춰 여러작가들이참가했던 히로시마(廣島)아시아작가전과 4년마다 개최되는 후쿠오카(福岡)아시아현대미술전등 한국작가 초대전이 계속 이어져왔다.
앞으로 계획돼 있는 전시로 미뤄보더라도 한국미술에 대한 이같은 일본의 관심은 한동안 더 지속될 전망이다.올가을 아자부미술공예관에서 온양민속박물관 소장품이 전시되며 베니스 비엔날레에서특별상을 받은 바있는 전수천(全壽千)씨의 도쿄( 東京)전이 계획돼 있다.한편 내년봄에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전이,그리고 가을에는 일본 공공미술관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사이타마현립근대미술관에서 열릴 韓.中.日작가들의 테마기획전에 이승택(李升澤).육근병씨가 초대될 예정이어서 일본미술계에 일고있는 한국미술의 파장이 간단한 것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일본이 한국미술에 전에 없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패전(敗戰)이후 일본은 미국문화의 변방지대化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중심을 상실한 일본은 막강한경제력과 함께 자기들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게 됐 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문화 속에서 다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일본미술계에 한국은 하나의 대안으로 비춰지는 것같다.그러나 그 양상은 복합적이고 아직은 다소 모호하다.뉴욕미술이란 중심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전략의 일환인듯도 하고,그와는 정반 대로 최근 미국에서 일고 있는 복합문화주의의 또다른 적용사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미술을 자꾸 부르는 그들의 모습에는 한국미술에 대한 애정과 단순한 곁눈질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본에서의 갑작스런 한국미술조명이 우리미술 내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한국미술의 발전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우리의 시각에서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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