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美 흑인사형수 구명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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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유럽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한 흑인 사형수 구명운동에발벗고 나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해체주의를 정립시킨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독일의 대표적인 작가 귄터 그라스를 비롯해 피터 한트케.해롤드 핀터등 세계적인 지성들의 구명대상이 된 행복한 사형수는 백인경관을 총으로살해한 무미아 아부 자말.
아부 자말은 81년 필라델피아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자신의 형이 체포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관을 살해한 죄로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고 오는 17일 집행될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아부 자말이 본격적으로 유럽사회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감옥에서 집필한 그의 회고록 『사형을 기다리며』(원제 Live From Death Row)가 번역소개 되면서부터다.
이 책을 통해 아부 자말은 평소 유럽지식인들이 「미국의 두가지 사회악」으로 생각해왔던 사형제도와 인종차별의 전형적인 희생양으로 부각됐다.
호메이니를 풍자한 『악마의 시』를 출간했다 도망중인 샐먼 루시디가 회장으로 있는 국제작가회의 사무국장 크리스천 샐먼은 아부 자말을 1백년전 프랑스 법정이 만들어냈던 희생양 드레퓌스에비유했다.
샐먼은 『아부 자말은 과거에 흑인과격단체인 흑표범(BlackPanther)당원이었으며 저널리스트로 흑인 지역사회에 대한 백인경관들의 폭력을 지속적으로 비난해왔던 인물』이라며 『이만큼백인사회를 위한 좋은 희생양이 어디 있느냐 』고 말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8월 둘째주 파리에서 모임을 갖고 아부 자말의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탄원서를 발표했다.이 자리에서 아부 자말은 연설의 자유와 인종간의 정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순교자로 떠받들어졌다.
데리다는 아부 자말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판사들을 『마음이 얼어붙어 사형선고를 내렸고 귀까지 난청이어서 탄원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다』(Hard of hearing,hard of heart)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아부 자말 구명운동은 지식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인권운동가.일반시민들 사이에서도 전개되고 있다.벨기에와 독일의 외무장관들이주미대사를 통해 아부 자말 구명운동에 도움을 주라는 지시를 한것으로 알려졌고 유럽의 미국대사관 앞에서는 시 민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부 자말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려 그가 사형을 면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아부 자말을 기소한 검찰측은 살해 장면을 목격한 시민 3명의 증언이 워낙 결정적이라 판결이 번복될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17일로 예정된 사형집행은 연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알려졌다.국제작가회의 회원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유럽 지식인들은만일 17일 예정대로 사형이 집행되면 사형시간에 맞춰 주프랑스미국대사관 앞에서 아부 자말의 영결식을 가질 계획이다.
〈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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