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난소암 투병으로 영화는 지난해 말에야 완성됐다. 세계 첫 상영을 위해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18일까지, 서울 신촌 아트레온)를 찾은 해머 감독을 만났다. 커밍아웃을 한 레즈비언인 그는 지금까지 8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99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주도 해녀를 어떻게 알게 됐나.
“2000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안내책을 보다가 ‘제주도는 여성 다이버로 유명하다’라는 짧은 문구에 강하게 끌렸다. 여성들만의 그런 전통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당장 제주도로 내려가 약 1주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촬영하는 강행군을 했다.”
-영화내용을 보니 직접 해녀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던데.
“해녀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 봤다. 취미로 다이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오염 때문인지 물속이 온통 회색인 게 기억에 남는다. 전혀 낭만적인 체험이 아니었다(웃음). 생계를 위해 그런 일을 매일 해야 한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해녀들의 태도는 놀라웠다. 말투가 거칠고, 살가운 면이 없긴 했지만 고된 일을 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가며 피로를 푸는 게 보기 좋았다. 나도 같이 춤추고 노래했다. 해녀들의 끈끈한 연대감은 가히 여성학적인 연구 대상이다.”
-해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뒤 느낀 점은.
“가부장적인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 해녀라는 여성 전통이 대대로 이어져 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계속 숫자가 줄고 노령화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국 정부에서 이렇게 세계적으로 귀한 문화와 전통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외국인으로서 해녀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많이 힘들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해녀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들의 힘든 삶을 담담하면서도 자세하게 해줬다. 그들이 이방인인 나를 잘 참아줬다고 생각한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원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실험·퀴어(동성애 관련 영화) 영화 감독으로 유명한데.
다큐멘터리 '제주도 해녀'의 한 장면.
-영화를 통해 진보 성향의 목소리를 활발히 내고 있는데.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을 뿐이다. 그러려면 공상만 할 게 아니라 행동에 옮기는 실천이 필요하다. 나의 실천 방법은 영화다. 난소암 투병 뒤 삶의 소중함을 배우게 됐다. 행복하게 사는 것의 소중함도 느끼게 됐다. 이왕이면 모두가 행복한 게 좋지 않겠나.”
-영화 쪽에서 일하게 된 데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고 들었는데.
“사실 어머니는 내가 셜리 템플과 같은 아역 배우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바비 인형처럼 키우려고 했다. 비록 실패했지만(웃음). 우크라이나에서 이민 온 가난한 집안 출신인 어머니는 딸만은 귀하게 키우고 싶어했다. 나중에 영화 감독을 하겠다고 하자 ‘너무 힘든 일을 하려고 한다’며 걱정했다. 내 첫 작품을 완성하기 몇 달 전에 돌아가셔서 가슴 아프다.”
글·사진=전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