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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R&D도 공기 단축” … 정부,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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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이명박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은 ‘결과중시형’으로 세게 드라이브가 걸릴 전망이다.

신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최대의 특징은 연구개발 측면에서 확실한 빅2 체제를 갖춘 것이다. 연구개발 예산(전년도 기준)으로 볼 때 과학기술(약 24%), 산업자원(약 23%), 국방(약 11%), 교육(약 11%), 정보통신(약 10%)이 정부 내 빅5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교육과 과학기술이 합쳐져 약 35%, 산업자원과 정보통신이 합쳐져 약 33%로 늘었고, 국방은 그대로 11%를 유지해 빅3의 모습이 됐다. 국방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두 부문이 70% 정도를 장악하는 빅2 체제가 만들어진 셈이다.

여기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초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지식경제부는 산업기술 연구개발을 책임지도록 하면서 정부출연 연구소도 절반씩 갈라 맡게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교과부와 지경부를 대부처로 만들어 힘을 크게 실어주는 대신 주변에 견제하고 때로는 정책을 리드해 갈 기구와 장치를 많이 만들었다. 기획재정부가 과기예산 조정권을 갖고 간 것이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강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미래기획위원회의 설치, 경제수석실과 교육과학문화수석실의 관여 등은 하나하나가 무게 있는 조치들이다. 지난 10년간 일방적으로 과기예산을 늘려주던 방식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주는 만큼 챙길 것은 챙기겠다는 기업가 마인드가 배어 있다. 그 때문에 연구개발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기는 ‘공기 단축’이라든가, 돈이 얼마나 들더라도 그 이상의 경제적 결과를 내면 된다는 ‘밸런스 시트(대차대조표) 중시’라는 경제현장 용어가 과학기술계에 퍼지고 있다.

다만 교육부와 과학기술부가 화학적 결합이 돼 시너지를 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산업정책을 하던 산업자원부가 대형 연구개발 부처로 거듭나면서 제 역할을 찾는 데에도 적지 않은 좌충우돌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신사업 창출과 성장동력의 핵심이 될 정보기술(IT) 분야의 기술개발과 IT를 통한 정부효율화, IT 서비스산업 육성 등은 범부처적 관리체제와 노련한 관리자를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장 풀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미시경제 인식에 대한 우려=연구개발에 깊이 관여할 주요 인사들을 보면 거의가 거시경제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금융문제가 최대 이슈가 돼 있고 이것이 금방 해결될 일도 아니어서 경제정책의 관심이 거시 쪽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자칫 성장동력을 뒷받침할 미시경제 쪽이 소홀히 다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산업연구원의 김원규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실패와 시장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민간부문과 정부부문 간의 공동협력이 중시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성장과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미시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빅2의 통섭이 쉬울까=기초연구와 산업기술연구가 확연히 분리되면서 과거와 같이 연구영역을 놓고 부처 간에 벌어졌던 마찰은 완화되겠지만 지나친 분리가 연구의 사각지대를 넓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종오 기업기술연구원장은 “결국은 양 부처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연구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적 관리를 통해 분야와 기능을 조정해 나가는 게 최선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부처 간의 데이터베이스 공유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대학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없을까=정부는 대학 연구개발비가 현재 정부 예산의 25%에 이르지만 5년 후 50%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른바 풀뿌리연구(소액지원연구)를 강화해 대학연구를 전원 참여 형태로 만든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학에서 실행될 거대연구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대학의 체질개선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거액의 투자가 정부가 원하는 만큼 결과를 낼 것이냐는 것이다. 또 목돈을 쓰는 데 대한 평가체제도 아직은 미흡한 편이다.

◇다시 거론되는 출연연구소 활성화=정부 예산의 절반을 쓰는 출연연의 경우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우선 출연연의 임무다. 국가가 목표를 지정해줘야 하는지, 출연연이 먼저 목표를 제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싸움이지만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다. 최영락 과총 과학기술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출연연이 살길은 세계 톱수준의 ‘스타 프로젝트’를 먼저 몇 개 내놓고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출연연이 자신의 특성에 맞는 지역대학과 연계해 지역에 도움을 주는 연구를 할 때 존재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과부와 지경부로 양분된 출연연 간의 연구 평가방식 차별화, 정보교류와 공동연구 등의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기업을 어떻게 끌어들이나=국가 연구개발의 성패는 사실상 기업참여에 달려 있다. 2006년도 기업 연구개발비는 21조1268억원으로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의 77.3%를 차지했다. 현재 기업부설 연구소는 1만5000개를 넘어섰고, 연구인력도 20만 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연구비 전체의 75%를 넘는 데다 상위 5개사가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최근 들어 중소 및 벤처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크게 늘고 있으나 아직은 낮은 수준이다. 신정부는 5년 후인 2012년까지 총 69조원(GDP 대비 총연구개발비 투자 5%)의 달성을 정부부문 예산 증액과 민간부문 투자 유인으로 실현하려고 한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장영주 기술정책팀장은 “국가 연구개발사업 계획 수립 시 기업의 기술수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대기업 기술담당최고경영자(CTO), 연구소장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산업계 지원 비중(현재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17%)을 매년 5%씩 늘려 30% 선까지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재원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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