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외로운 식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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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외로운 식량’-박찬(1948~2007)

이슬만 먹고 산다 하데요

꿈만 먹고 산다 하데요

그러나 그는 밥을 먹고 살지요

때로는 술로 살아가지요

외로움을 먹고 살기도 하지요

외로움은 그의 식량,

사실은 외로움을 먹고 살아가지요

외로움은 그의 식량이지요


시인은 이슬만, 꿈만 먹고 산다고 한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들은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남들만 시인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규정하기도 한다. 시인이라고 그럴 듯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없을 것인가. 그러한 욕망을 억제할 때 시가 쓰여지므로, 시인의 외로움과 가난함은 시를 위한 음식이다. 그렇다고 시가 시인의 삶의 전부는 될 수 없다. 눈물이 목젖까지 차올라도, 배가 고픈 게 삶이다. 눈꺼풀을 한 번만 깜빡여도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지만, 밥솥을 끼고 맨밥을 먹는 것.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무엇인가를 스펀지처럼 적셔내려 하지만 심장이 쿵쿵쿵 뛰고 기어이 목젖까지 올라오는 것. 생전엔 이슬만, 꿈만 먹고 산다 웃으며 말하더니, 이젠 죽어서 외롭다 말하는 당신. 눈물에 적신 이 맨밥을 드리고 싶다.

<박형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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