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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권 향한 야망이 꿈틀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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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정몽준을 대통령으로.”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1동 한나라당 정몽준(MJ) 의원 선거사무실. 지지자와 자원봉사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는 대선 출정식을 연상시키는 구호들이 터져 나왔다. 선대위 명예위원장 자격으로 연단 위에 선 유용태 전 의원은 “오늘 아침 각 조간 신문들이 정 의원의 대권·당권 도전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번 승리는 결과가 아니고 대장정의 시작”이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환호 속에 등장한 정 의원은 마이크를 잡자 이상적인 대통령론을 폈다. 이날 저녁 청와대 만찬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할 얘기를 준비했다며 내용을 소개했다. 4년 중임제와 5년 단임제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클린턴과 레이건의 성공 요인은 바로 야당 의원들을 자주 만났던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했다. ‘정상’을 향한 그의 두 번째 도전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MJ 대권 프로젝트 시작되나

정동영 후보를 꺾고 서울 동작을에서 당선된 정몽준 의원이 10일 서울 사당동 거리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기자]

정 의원의 어법은 촌철살인과는 거리가 멀다. 핵심을 비켜 가면서 변죽을 울리는 독특한 화법은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정몽준식 허무 개그’로 인터넷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9일 밤 그의 모습은 달랐다. 이날 저녁 방송사 출구 조사가 발표되고 승리가 기정사실화되자 당사에 나타난 그의 주변에는 취재진이 몰렸다.

-당권에 도전할 생각이냐.
“이제 6선이 되기 때문에 전당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건 방관이다. 저를 뽑아준 지역구민들의 뜻에도 맞지 않는다. 지역구민들이 원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참여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정치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기분이 든다. 이제는 정치의 중요한 부분에 참여하겠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권 도전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울산 동구에서 출마할 때는 공직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다. 하지만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겠다. 대학 4학년이 돼서 처음 주전이 됐다는 생각으로 하겠다”며 ‘정치인 정몽준’을 선언했다.

그의 고백대로 정치인 MJ는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1988년 처음 금배지를 단 이후 20년째 국회의원을 하고 있지만 18년가량을 무소속으로 있었다. 의정활동보다는 축구협회 일이 우선이었다. 그의 국회 출석률은 매년 최하위 수준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에서의 5년 세월은 그에게 정치적인 동면기였다. 2002년 12월 18일 밤 대통령선거를 불과 수 시간 앞두고 이뤄진 노무현 후보에 대한 갑작스러운 지지 철회는 그에게 ‘ 정치적 변절자’라는 주홍글씨를 남겼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실제로 한나라당 입당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짠돌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10억원을 특별당비로 헌납하더니 올 1월 새 정부 대미 특사단장으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글로벌 역량을 과시했다. 며칠 뒤 당 최고위원에도 선출됐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그가 대주주(지분율 약 11%)로 있는 현대중공업은 대통령을 꿈꿨던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을 담은 기업 이미지 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지난달 6일 정몽준 의원의 거액 출연 소식이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2007년 배당금 615억원 중 세금을 제외한 521억원의 30%가량에 해당되는 150억원을 새로 만드는 공익법인인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한승주)에 출연키로 했다.

앞서 2월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연구원 개원식에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 이경숙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등 각계 인사 200여 명이 몰렸다. 참석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오늘이 한국의 ‘수퍼 월요일’인 것 같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가 ‘한국의 헤리티지재단’으로 키우겠다고 밝힌 연구원은 이례적으로 거액의 MJ 사재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정 의원의 대권 싱크 탱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했던 국제정책연구원(GSI)처럼 MJ를 상징하는 각종 정책과 이론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당권 도전이 첫 번째 승부처

차기 대권주자로서 MJ의 이미지와 조직력은 박근혜 전 대표나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동안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업과 이를 바탕으로 쉽게 이룬 5선 의원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다.
6선을 이룬 서울 동작을 출마는 이런 측면에서 하나의 정치적인 승부수였다.

지난달 13일. 국제축구연맹(FIFA)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취리히로 날아간 그는 채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강재섭 대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야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가 나오는 동작을 지역에 출마하라는 요청이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탔던 그는 다음 날 급히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동작을 출마는 이미 언론에 기정사실화됐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15대 총선 때 거물인 이종찬 의원과 맞대결을 펼쳐 자신을 업그레이드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부산에 몸을 던져 낙선한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하라는 원로들의 충고를 듣고 정 의원이 어렵게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올인했다. 새벽 2시에 유세 일정을 마친 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 5시에 다시 출근길 인사를 하는 강행군을 선거운동 기간(13일) 내내 이어갔다. 김정남·이회택·허정무·김호곤·황선홍·허재 감독과 안정환·안현수 선수 등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나타났다. 결혼 후 언론 접촉을 꺼리던 아나운서 출신의 조카며느리 노현정씨 부부도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이번 서울 지역구에서의 첫 승리로 정치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직은 ‘큰 꿈’을 향해 갈 길이 멀다.

우선 그의 당권 도전 성공 여부가 1차 관건이다. 그는 당내 입지가 취약하다. 반면 잠재적 경쟁자인 그의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생 박근혜 전 대표는 비주류의 수장으로 막강한 세를 과시한다.

한 가지 변수는 친이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이재오 의원의 낙선 때문에 친이계가 대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 ‘친박근혜’에게 당권을 내주는 것을 꺼리는 친이 측 입장에선 MJ를 연대의 대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적 자산 ‘축구협회’와 ‘현대중공업’

MJ에 대한 비판적 이미지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만든 ‘국민통합21’ 때의 모습에 집중돼 있다. 당시 정 의원을 도왔던 정치인들은 대선 이후 그와 등지면서 독단적인 그의 스타일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측근들은 상당 부분 잘못 알려져 있다고 해명한다. 기업 경영 스타일을 당에 도입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빚어진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3조원대의 자산가지만 씀씀이가 짜다는 비판도 단골 메뉴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정 의원은 부자라고 돈 뿌리면서 정치적 환심을 사는 것을 생래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한다. 특히 고 정주영 회장이 만든 국민당이 돈 출처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는 일을 겪으면서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습관이 몸에 뱄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인적 자산도 빈약하다. 오래 무소속 생활을 했기 때문에 측근 정치인은 거의 없다. 그의 정치적 후견인이자 멘토 역할을 해온 대표적 인사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한승주 전 고려대 총장서리다. 강신옥 전 의원은 37세에 초선 의원이 된 정 의원을 유력 정치인들에게 소개시켜 주며 친분을 맺어 왔다. 함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을 하며 친해진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지난해 12월 정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을 주선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고 정주영 회장의 ‘술친구’였던 방송작가 김수현씨도 그가 무척 좋아하는 인물이다. 처남인 외국어대 김민녕 교수는 2002년 자문 교수단을 이끌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홍윤오 언론특보와 정광철 보좌관 정도가 가장 믿는 측근이다.

부족한 친화력에 빈약한 인적 네트워크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을 ‘거물 정치인’으로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두 축은 ‘현대중공업’과 ‘축구협회’다. 하나는 세계 1위의 조선소이고, 또 하나는 한국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를 총괄하는 단체다.

그를 국내 1위의 부자로 만든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호황을 타고 시가 총액(33조원) 국내 3위의 회사로 우뚝 서 있다. 동해∼남해∼서해에 걸쳐 조선소를 운영 중인 현대중공업 그룹은 직원 수만 4만5000명이 넘는다. 2002년 월드컵 유치 성공과 4강 신화는 그를 일약 유력 대권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조선소 신화는 MJ의 공로도 있지만 선대 회장의 몫이 더 크다. 15년째 장기 집권 중인 축구협회장 자리는 그의 네 번째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물러나기로 이미 발표가 됐다.

결국 정 의원의 대권 프로젝트 성사 여부는 그가 앞으로 어떤 리더십과 비전을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다. MJ 자신의 말처럼 ‘본격적인 정치’는 이제 시작된 듯하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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