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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보는 ‘엄마가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다. 유용한 ‘감각 수집’ 수단이자 골프정보와 건강지식을 얻는 ‘실용 보따리’다. 이코노미스트가 주요 기업 CEO들에게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을 물었다.


하루를 30분 단위로 나눠 쓴다는 국내 최고 유통기업 신세계의 구학서 부회장.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집 근처 우면산을 오르는 활동적인 CEO지만 TV도 열심히 본다.

특히 주말 저녁에는 KBS 주말드라마인 ‘엄마가 뿔 났다’를 즐겨보는데 드라마를 통해 젊은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고객, 직원과 쌍방향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가 구 부회장을 TV 앞에 붙잡아 둔다.

인기 외식업 브랜드 매드 포 갈릭을 운영하는 남수정 썬앳푸드 사장도 구 부회장과 비슷한 이유로 TV를 켠다. 남 사장은 어떤 프로그램보다 ‘광고’를 꼼꼼히 챙긴다. 젊은 사람들의 ‘문화 코드’를 읽기 위해서란다.

이재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도 각종 광고를 눈여겨본다. 생활용품 업체인 유니레버코리아에서 오랫동안 사장직을 맡은 터라 상품 광고에 자연스레 눈이 가는 모양이다. 다른 업종에 종사하면서도 고객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겠다는 열정이다.

1999년에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티티엘’ 광고가 처음 선보였을 때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후 10년 동안 광고는 각종 유행어와 놀이를 만들어내는 장이 됐다.

채은미 페덱스코리아 지사장은 주로 출근 전 새벽, 퇴근 후 늦은 밤에 TV를 본다. MBC, KBS, CNN 등 평일엔 거의 뉴스로 시간을 보내지만 주말엔 케이블 채널인 온스타일의 오프라 윈프리 쇼를 즐긴다. 채 지사장은 “TV를 봄으로써 타인과 소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평소 TV를 거의 못 본다는 서수길 위메이드 사장은 얼마 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코너다. 이 코너는 기존과 다른 진행 방식으로 다양한 층에 ‘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임업체를 경영하는 서 사장은 게임 유저(user)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오락 프로그램을 본단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대화를 원활하게 하려고 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도 즐겨 본다. 미드 열풍을 불러온 ‘프리즌 브레이크’를 출장시 비행기에서 볼 때가 있다고도 했다.

최홍 ING자산운용 사장은 디스커버리,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같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고객, 직원과 대화할 때 활용한다.

육군사관학교의 대표화랑 출신으로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이는 이강호 그런포스펌프 사장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DVD를 구매해 직원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드라마, 뉴스, 광고, 다큐멘터리 같은 다양한 TV 프로그램이 CEO들에게 ‘소통의 지름길’이 된 셈이다.

슈즈 멀티숍인 ABC마트의 안영환 사장은 골프 채널을 자주 본다. 안 사장과 함께 최병인 이지스효성 사장도 정기적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으로 ‘골프’를 꼽았다. 한창 골프를 배우는 중이라는 이향림 볼보코리아 사장은 골프 프로 게임을 보면서 ‘공부’한단다. TV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게 이 사장의 얘기다.

CEO들이 TV에서 얻는 지식과 정보는 많다. 강태선 기산과학 사장은 TV에서 맛집,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남수정 사장은 푸드채널(현 올리브)을 고정해 놓고 볼 정도로 요리 관련 프로그램은 놓치지 않는다. 남 사장은 “아무래도 외식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맛집 프로그램은 정보 수집 차원에서 보게 된다”고 했다.

CEO들은 틈틈이 보는 TV에서 경영철학도 배운다. 최병인 사장은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현실 경영에 적용한다. 최 사장은 “역사상 발전한 나라의 문화와 사고 체계에서 얻은 지혜가 사람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봉수 키움증권 사장은 KBS ‘동물의 왕국’을 즐겨 본다. 이 프로그램은 자타 공인 최고의 동물 다큐멘터리로 최근 경영과 접목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동물의 생존 법칙을 현실 세계의 치열한 경쟁에 비유한 책이 여럿 출간됐을 정도다.

드라마도 단순한 재미를 넘어 경영서의 역할을 한다. 이강호 사장은 KBS ‘대왕 세종’, SBS ‘왕과 나’등 사극을 즐겨 본다. 바쁜 일정에 쫓겨 이동하는 차 안에서 TV를 보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에도 많은 것을 배운단다.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는 조영탁 휴넷 사장도 KBS ‘불멸의 이순신’은 기억했다. 직장인 경영교육을 맡고 있는 조 사장은 “리더십에 관한 좋은 내용이 많이 나와 강의할 때 활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채은미 사장은 CNN을 보며 영어 실력을 다듬고, 구본균 아가방 사장은 화제를 모았던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건강 지식을 얻는다.

프로그램 형식이 CEO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서수길 사장은 콘텐트보다 콘텐트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저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핀다. KBS ‘비타민’같은 사용자제작콘텐트(UCC)를 이용한 프로그램이 서 사장의 관심사다.

재미가 정보보다 우선일 때도 있다. 지난해 출범한 JP모간자산운용 코리아를 맡고 있는 차승훈 사장은 매일 아침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면서 TV를 본다고 했다. CNN, YTN 등 주로 시사 채널을 많이 보지만 최 사장에게 TV는 즐기는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구학서 부회장과 손혜원 크로스포인트 사장은 야구중계를 보며 ‘기쁨’을 누린다고 했다. 특히 일본 요미우리 팀의 경기를 즐겨 본다는 구 부회장에게 그때만큼은 달콤한 휴식 시간이 아닐까. ‘참이슬’ ‘처음처럼’ ‘힐스테이트’ 같은 유명 브랜드를 만든 손혜원 사장은 “정보는 뉴스에서, 기쁨은 프로야구에서”라며 즐거움을 강조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쾌도 홍길동’. 이강호 사장이 시사프로그램인 ‘KBS스페셜’에 이어 베스트 프로그램으로 꼽은 드라마다. 이 사장은 TV 시청을 “건강하고 즐거운 마인드를 위한 리프레시먼트(원기회복·refreshment)”라고 표현했다.

수입차업계의 스타급 여성 CEO인 이향림 사장은 때로 웃음에 몰입하기 위해 오락프로그램을 본다. 그래서 메시지가 있는 블랙 코미디나 시사풍자 개그보다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MBC ‘무한도전’을 자주 본다고 했다.

구본균 사장은 KBS ‘가요무대’를 즐겨 본다. 심금을 올리는 옛 가락을 느낄 때만큼은 구 사장도 CEO가 아닌 자연인으로 TV를 즐기는 것이다.

많은 CEO가 ‘누구와 함께 TV를 보느냐’는 질문에 집사람, 가족이라고 답했다. CEO에게 화려한 경력과 수많은 직원이 있지만 가장 든든한 ‘빽’은 뭐라 해도 가족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TGI프라이데이스를 들여온 이선용 아시안스타 사장은 MBC ‘이산’, KBS ‘대왕 세종’ 같은 사극을 보며 자녀들과 역사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차승훈 사장은 평소 뉴스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외국에 있는 가족이 집에 올 때면 MBC ‘무한도전’, KBS ‘1박2일’ 같은 오락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린다. “딸이 워낙 좋아해서”라는 게 이유다.

MBC의 스타 PD에서 교수직을 거쳐 현재 방송사를 경영하는 주철환 OBS 사장은 “TV 안에는 온갖 ‘삼라만상’이 다 있고, 프로그램마다 발전, 전개, 위기, 결말이라는 복합적인 구조가 들어 있다”며 “‘사람’인 CEO에게 충분한 메시지와 휴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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