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9) 『이럴 줄 알았으면,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좋을 뻔하지 않았냐?』 『뭐 어째 임마! 안 해? 이 새끼가 이거 정신이 있는 놈이여 뭐여.』 길남이 팔꿈치를 기대고 있던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진규 앞에놓였던 술잔이 나뒹굴었다.진규가 놀라면서 앞에 있던 안주 그릇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정어리와 무를 넣고 간장에 졸인 안주였다. 탁자를 내려다보면서 길남이 중얼거렸다.
『죽었다구…죽었다 그말이지.』 안주 그릇에 빠졌던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빨면서 진규가 실눈을 하고 길남을 건너다보았다.
『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유곽에 조선 여자가 어디 그애하나 뿐이었냐?』 길남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탁자 위에 놓여진그의 손이 주먹을 움켜쥐면서 부르르 떨렸다.비명처럼 길남의 목소리가 찢어져나왔다.
『다 죽여!』 무엇을 집어던지는가 싶어 진규가 탁자 밑으로 몸을 웅크렸다.
진규가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뭔가 길남의 눈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그는 벌써 핏발이 선 눈알에 눈물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그 말을 했었다,진규는.화순이가 죽었다는 그 말을.
무슨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 것도 아니었다.화순이 물에 빠져죽은 것이 계기가 되어,조선사람을 학대하는데 대한 항의와 함께시신을 찾아 장례를 지내겠다면서 징용공들이 파업을 시작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려던 게 진규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태수와 함께 자신들이,길남이 네가 있을 때도 못했던 일을 해냈다고 자랑섞어 이야기를 하려던 진규였다.그런 마음이 앞서서 화순이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말을 서둘러 지껄여대는 진규에게 길남이,마치 벌레가 기는 듯한 목 소리로 물었던것이다. 『그래서,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거냐? 결국 화순이가,물에 빠져서 죽었다,그말이냐.』 묻고 있는 길남의 입술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야 진규는 비로소 무언가 일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탁자 위로 얼굴을 내밀면서 진규가 더듬거렸다.
『너 정말,해도 너무한다.왜 이러는 거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