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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삼촌의꽃따라기] 보춘화, 소박해서 더 곱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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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보춘화

알릴 ‘보(報)’자 써서 보춘화다. 말 그대로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뜻이다. 춘란(春蘭)이라고도 한다. 남쪽 섬 지방에서는 3월 초순부터 볼 수 있고, 그 밖의 지방에서는 3월 말께부터 꽃대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봄이 한창인 때 피는 것이다. 그래서 보춘화보다는 춘란이 더 적합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

꽃은 헬멧을 쓴 듯한 모습이고 다 핀 꽃에서는 영양제 비슷한 향기가 난다. 그런데 꽃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산에서 보춘화를 만난 이는 의외로 많지 않은 듯하다. 이른바 보춘맹(盲)인데, 난 종류들은 귀하기도 하거니와 꽃이나 피어야 보이지 그 전까지는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쉽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러해서 보춘화와의 인연을 만들지 못하던 중에 내변산 깊은 골짜기의 덜 녹은 눈 속에서 시퍼렇고 빳빳한 잎을 드리운 풀을 발견했다. 맥문동인가 해서 잎을 살펴보니 잎의 넓이는 맥문동과 비슷한데 어째 좀 낯설다 싶었다. 그랬다. 분명 달랐다. 맥문동의 잎은 편형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끝이 둥근 데 비해 내변산에서 본 것은 잎 가운데에 골이 패고 가장자리에 잔톱니가 있으며 끝이 뾰족했다. 얼른 밑을 들춰보니 자그마한 키의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보춘화였다. 꽃핀 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그 멀고 깊은 산을 찾아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 정도 수고는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 산을 다시 찾지 않아도 되는 일이 생겼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번 구별해 내는 눈이 생기니까 보춘화가 여기저기 쉽게 눈에 띄었다. 변산바람꽃이 지천으로 피는 내변산 일대는 물론이고 남부 지방의 여러 산과 바닷가 쪽에서도 적잖이 자라고 있었다. 작은 산 하나가 보춘화로 뒤덮인 군락지를 만나기도 했다. 어느 산에는 등산로 바로 옆에 피어 있어 조마조마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쳐 갔다.

보춘화는 한때 환경부에서 법정 보호종으로 지정하기도 했으나 보호종의 수를 줄이는 과정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보춘화의 안위가 더욱 염려스럽게 되었다. 보춘화의 변이종은 ‘꾼’들의 표적이다. 입술꽃잎 반점의 문양과 그 바탕색, 잎에 들어간 무늬에 따라 수천만원에 거래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맘때면 희귀종을 찾아 산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관상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마구잡이로 캐다가 길거리에서 팔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꽃은 있는 자리에서 가장 예쁜 것을.

글·사진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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