停戰체제 무력화 북한 속셈과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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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은 지난 수년간 정전체제를 무력화하고 이를 기정사실화한 뒤 미국과의 양자대화및 협상을 통해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꾸준히추진해왔다.북한이 정전체제를 본격적으로「용도폐기」하기로 결정한것은 80년대 중반의 고르바초프 등장과 이에 따른 동서간 해빙분위기로 동구 공산제국들이 무너지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이다.
동구의 공산국가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면서 체제위기감이 고조돼있던 북한은 지난 91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남측대표에 최초로한국장성이 임명되자 이를 핑계삼아 노골적인 정전체제 무력화 공작을 펴기 시작했다.
북한이 정전체제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가한 것은 지난 93년 4월이었다.
정전협정의 이행과 비무장지대 감시를 위해 중립국으로 구성된 중립국감시위원회가 바로 그 표적이었다.
중감위는 북한쪽에 체코와 폴란드,유엔군쪽에 스위스와 스웨덴등4개국으로 구성되어있다.북한은 이중 북측대표의 철수를 시도했다.93년 1월 이미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된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 및 슬로바키아로 분립되자 북한은 체코가 舊체코슬로바키아의 중감위 참여자격을 계승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 이듬해 4월 북한은 드디어 군정위에서 대표단을 일방적으로철수하고 중국에도 집요하게 군정위 대표의 철수를 요구해 같은해8월에는 중국대표의 소환도 얻어냈다.이로써 군정위에서 북측을 대표하는 중국과 북한이 모두 철수해 군정위가 완벽하게 마비되는상태가 됐다.
북한은 왜 이렇게 집요하게 정전체제의 무력화를 추진해왔는가.
북한의 정전체제 붕괴작전은 평화체제협상을 시작하기 위해 실행돼야 할 일종의 전제조건으로 등장했다.
북한에 있어 평화체제의 수립은 장기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겨냥한 것이고 미군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더라도 미국으로부터 체제생존을 보장받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종합적으로 볼때 북한은 미군철수라는 전략적 목적과 체제고립 탈피라는 상황의 필요성을 만족시키려다 보니 정전체제 붕괴라는 작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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