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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性的 접촉은 친밀감 표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가상 스토리 하나.
대학을 졸업한 딸이 대학 연구실에 취직했다.
딸:아빠! 오늘 교수님이 내 등뒤에서 팔을 뻗쳐 나를 안듯이하면서 기기 조작을 가르쳐 줬어요.
엄마:뭐라고? 딸:며칠전엔 등에 손을 대고 머리를 어루만지며입방식(入房式)을 하자는 말도 했어요.
아빠:그 분 참 인간적인 분이구나.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그런 것이니 개의치마라.건전한 품위와 예의를 가진 일반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문제될 게 없어.친밀할수록 좋으니 앞으로 또 해달라고 하려므나.
이는 25일 있었던 서울대조교 성희롱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가밝힌 판단근거의 일부를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 본 것이다.원고측인 禹조교에게 패소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申교수가 원고의 어깨.
등.손발을 접촉한 사실,등에 손을 대거나 머리를 만지거나 입방식을 제의했다는 사실관계는 인정했다.그러나 이는 노골적인 성적의도가 아니라「친밀감의 표시」며 「사회관습상 의례적으로 이뤄지는 언동에 불과」하므로 성적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재판의 판단 기준은「투쟁적이고 대립적인 여성주의적」관점이 아니라「건전한 품위와 예의를 지닌 일반 평균인」의 입장이어야 한다고 했다.이를 전적으로 수용하면 앞의 대화는 가상이 아니다.불쾌하고 충격적인 성적 접촉임에도 남성이『친밀 감이야』라고 말하며 접근하면 기쁘게 웃으며 개의치 않아야 하는 게우리 여성의 의무인 것처럼 보인다.국민 대다수(?)인 남성의 일상적 행동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성적 괴롭힘」이 되려면 성적 접촉이나 언행에 악의가 있어야한다는 판단근거도 문제다.성희롱이 문제됐을 때 자신에게 불순한동기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특히 이번 판결에서는 피고인 申교수의 악의를 입증하는 결 정적 증거인 前조교의 사실진술서를 재판부가 전혀 참고하지 않아 재판의 공평성마저 의심치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연「껴안듯이 하고 기기 조작을 가르치는 태도나입방식하자는 말을 공공연히 해도 좋은 사회」인지 이 사건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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