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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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제2부 불타는 땅 운명의 발소리(1)돌투성이의 흙짐을 지고 터널을 나오던 지상은 지하공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수레를 피해 옆으로 비켜섰다.한사람이 끌고 두 사람이 뒤에서 밀고 있는 수레였다.지상은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혀를 굴려 메마른 입안을 적셨다.소매에 돌가루가 묻어서 땀투성이의 이마가 쓰라렸다. 덜컹거리며 수레가 지나가자 뒤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는 거냐? 빨리빨리 움직여.』 시라가와라고 창씨 개명을한 백도현이었다.현장감독 가운데서도 성질 더럽기로 이름난 자였다.앞 사람을 따라서 지상은 묵묵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알전등이 비추는 전등불이 터널 벽을 따라 걸려 있기는 했지만 발밑은 많이 어두웠다.
허리를 굽히고 걸으면서 지상은 또 눈알을 아리게 하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벌써 여기 온지가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릴 것도 없었다.어느 새 절기가 바뀌었다는 걸,찌는 듯 더운 날씨가 아니라 흘러내리는 땀이 말해 주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발밑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소리없이 중얼거렸다.꿈틀,꿈틀.그래 그렇게 가는 거다.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벌레처럼말이다. 노예라는 말이 싫어서 그는 스스로를 벌레라고 생각했었다.아침에 눈을 뜨고 자리에 누워서,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킬 생각을 못하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그때마다 자신에게 말하곤 했었다.짐승이라고 부를 것도 없다.그냥 벌레다.이건 벌레 가 사는 거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니까.
그때였다.앞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상은 그를 따라 걸음을멈추면서 고개를 들었다.
앞 사람이 중얼거렸다.
『공습경보 아냐?』 줄지어 가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걸음을 멈추면서 터널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밖에서 공습경보 사이렌 소리가 울려왔다.
『맞네.공습이구먼.』 잠시 후,터널 안쪽에서 요란하게 종이 울려댔다.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공습경보였다.
경보가 울린다고 해서 그때마다 비행기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고 폭격이 이어지지도 않았다.그러나 일단 경보가 울리고 나면 작업은 일시 중단되었다.
『떡 본김에 제사지낸다지 않소.좀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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