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구촌이색문화공간>14.도쿄신주쿠 하나조노神社 아카텐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도쿄(東京)제일의 번화가 신주쿠(新宿)에서도 가부키초(歌舞伎町)거리는 환락의 극치를 이룬다.각종 유흥가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나조노 진자(花園神社)는 이런 가부키초에 있다.숨이 막힐 듯이 밀집돼 있는 빌딩 숲 속에 마치 푹 꺼진 웅덩이처럼 깊숙이 박혀 있다.일본 신세대문화의 상징처럼 된 신주쿠에서 3백50여년 동안 덩그러니 옛 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 는 모습이 왠지 고집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이 진자가 문화공간으로 확고한 자리를 지키며 환락의 「신주쿠문화」에 당당하게 대항하고있다.대웅전.보물전.사무실에 고목 몇그루가 고작인 이 진자에서는 연극.콘서트.심포지엄등이 꾸준히 열려 신주쿠 에 문화적 향기를 은은히 풍기고 있다.
하나조노 진자가 문화공간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67년 일본의 극작가겸 배우이자 연출가인 가라 주로(唐十郎)가 진자 경내에 붉은 텐트를 치고 연극공연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예술인들은 곧잘 가부키초 술집에 모여 술도 마시고 토론도 했지요.가라도 그중 하나였는데 어느날 진자에 찾아와 공연을 할테니 마당 좀 빌려달라는 거예요.처음엔 망설였지만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어 허락했지요.』 하나조노 진자의 구지(宮司.우리나라의 주지)가타야마 후미히코(片山文彦)의 말이다.가라는 예부터 진자가 마을 행정.문화의 중심역할을 했었던 점에 착안,진자를 문화공간으로 되살릴 생각을 했다.그는 진자에서 『빈로(檳老)의봉인』『두 도 시 이야기』『사랑의 걸식』『방랑하는 제니』『소녀도시』『존 실바』등 일본 연극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연이어발표한다.
그후 하나조노 진자의 「아카(赤)텐트」는 일본 연극의 중심적역할을 담당할 만큼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텐트 안에는 객석이 따로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도록 돼있다.꽉차면 4백여명이 들어간다.텐트공연의 특징은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난다.
끝 장면은 항상 텐트 일부를 벗겨낸다.관객들의 시선은 일제히닫힌 공간에서 한없이 펼쳐친 바깥공간으로 향하고 배우는 텐트 밖으로 퇴장하면서 항상 꿈과 희망을 암시한다.공연은 보통 어둠이 밀리는 오후7시 시작된다.입장료는 3천3백엔( 한화 약3만원). 『텐트의 설치부터 철거까지 배우들이 직접 담당토록 함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 배우들을 훈련시킬 수 있지요.붉은 색의텐트를 선택한 것은 옛날 할머니의 속바지가 붉은 색이었던 점에착안했지요.따라서 텐트 속은 여자의 자궁을 뜻합니다.』 가라는아카텐트 속에 들어온 관객들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다는 어머니 자궁 속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원초적인 감정으로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지난 9일 경내에서 만난 관객 긴게쓰 히가시(金月恒)는 『초현대적인 신주쿠 거리에 진자라는 문화공간도 이색적이지만 천막이 주는 분위기는 어릴 적 향수를 느끼게 한다』며 가라가 연출한 연극 『배반의 거리』를 관람한 소감을 밝혔다.
가라는 하나조노 진자의 아카텐트를 본거지로 꾸준히 예술활동을한 결과 67년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상과 83년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그는 유신암흑기에 김지하 시인과 함께 국내에서 합동공연을 해 국내 연극팬들에게도 낯익은 인물이다. 현재 하나조노 진자는 아카텐트의 유명세에 힘입어 콘서트.
사진콘테스트 개최 등 다른 문화적 행사도 가꿔나가고 있다.대웅전쯤 되는 본전 앞에는 참배하러 오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팸플릿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제3회사쿠라 어린이사진콘 테스트』『고베대지진돕기 자선콘서트』『심포지엄-유교와 아시아』등 대부분이 문화공연 안내물이었다.
이처럼 진자가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높아지면서 예술인들의 발길도 잦아지자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있는 경내 한구석에 예술의 신을 모신 「예능천간신(藝能淺間神)」제단을 쌓았다.이 제단 주위에는 시주한 50여 예능인들의 이름이 푯말 로 세워져 있다.유명가수 야시로 아키(八代亞紀),한국계 유명연극배우 리 레이센(李麗仙),영화감독 이타미 주조(伊丹十三),영화배우 가토고(加藤剛)등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일요일엔 골동시장 변신 일요일이면 하나조노 진자에는 골동품상들이 몰려들어 또 한차례 「문화시장」을 형성한다.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도쿄에 사는 외국인들도 골동품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들고 나와 파는데 2천여평의 경내 마당이 좁을 만큼 인파로 북적거린다.
하나조노 진자 앞에 있는 이세탄(伊勢丹)백화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이시다 교코(石田京子)는 『하나조노 진자가문화공간의 역할을 해줌으로써 신주쿠 샐러리맨들에게 문화적 향수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며 하나조노 진자를 「문 화권의 온상(溫床)」이라고 칭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