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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음악의 ‘구약 성서’를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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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는 바흐 연주로 유명한 글렌 굴드를 기리는 ‘토론토 국제 바흐 콩쿠르’ 우승으로 바흐의 해석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32개 전곡 연주의 의미가 큰 것은 이 곡이 피아노 음악의 ‘신약 성서’이기 때문이다. 3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작품들에는 피아노 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테크닉과 감정이 모두 들어있다.

이 ‘신약 성서’와 짝을 이루는 ‘구약 성서’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이다. ‘평균율’은 1500년대 후반에 처음 제안된,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음의 조율 방법이다.

이전까지 쓰던 방법과 달리 평균율은 이 체계를 간편화해 모든 반음 사이의 간격을 똑같이 맞췄다. 어떤 노래를 조를 바꿔도 똑같이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평균율 덕분이다.

당시 이 새로운 체계는 음악의 순수한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바흐는 이 ‘혁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방식으로 모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곡을 시작했다. 19세기 초반 평균율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건반 악기 연주자들의 개론서가 됐다.

이처럼 중요한 작품을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무대는 흔치 않다. 한 권에 24곡씩 엮어진 두 권, 즉 48곡을 모두 연주하면 4시간이 넘는다. 악보만 260쪽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피아니스트가 안젤라 휴이트(50)다. 1994년부터 11년 동안 바흐의 건반악기 작품 전곡을 녹음하며 ‘바흐 전문가’로 떠오른 피아니스트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평균율 전곡 연주를 하고 있다. 14개월 동안 25개국에서 모두 110번 무대에 오른다. 서울에서는 이달 11일과 13일 하루에 24곡씩 LG 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평균율 전곡 녹음은 피아니스트들에게 큰 도전과제였다. 최초의 녹음은 피아니스트 에드빈 피셔가 했다. 평균율의 낭만적 해석에 반대한 피셔는 ‘담백한 바흐’를 표방해 인기를 모았다. 이후 글렌 굴드의 상상력과 프리디리히 굴다의 새로운 시도, 안드라스 쉬프의 학구적 표현은 이들을 거장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올려놨다. 휴이트 평균율은 “바흐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는 연주(영국 BBC 뮤직 매거진)”라는 평을 받고 있다. 휴이트의 이번 연주는 4시간동안 만나는 음악사의 한 장면이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도’부터 ‘시’까지 12개의 건반 하나하나를 으뜸음으로 해 장·단조의 곡으로 엮었다. 그는 건반악기 연주자가 평균율에 익숙해지도록 토카타·소나타·협주곡 등의 어법을 이 작품집에서 모두 썼다. 주제를 가지고 변용하는 푸가 기법도 이 작품에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바흐는 두 권의 작품집을 1740년 마지막으로 내놓으면서 건반 체계의 혁명을 예견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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