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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움직이는 2개 명문고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 …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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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파리 고교 종합 순위가 2일 발표됐다. 제일 큰 관심거리는 루이 르 그랑(LOUIS LE GRAND)과 앙리(HENRY)Ⅳ 가운데 누가 1등을 했느냐였다. 학교 순위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 합격률 등을 종합해서 낸다. 수백 년간 프랑스를 움직이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온 두 학교는 매년 최고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루이 르 그랑이 올해도 4년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앙리Ⅳ는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바칼로레아 전원 합격의 기록을 7년째 이어갔다.

프랑스의 저명 인사 가운데는 두 학교 출신이 많다. 루이 르 그랑은 정치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자크 시라크, 조르주 퐁피두,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문인으로는 샤를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장 폴 사르트르 등이 동창이다. 앙리Ⅳ의 졸업생 가운데는 미셸 푸코, 앙드레 지드, 기 드 모파상 등 철학과 문학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낸 인사들이 많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과 퐁피두 대통령은 이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프랑스에서는 두 학교와 같은 명문고를 거쳐 최고 그랑제콜로 꼽히는 시앙스포(파리 정치대학)나 국립행정학교(ENA), 이공계의 에콜 폴리테크닉 등을 졸업하는 것을 최상의 출세 코스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두 학교 입학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우선 중학교 성적이 20점 만점에 19점 안팎은 돼야 한다. 출석률과 수업 태도, 각종 사회 활동과 취미 생활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공부만 잘하는 ‘샌님’이 아니라 팔방미인을 원하는 것이다. 두 학교의 어느 학급이든 즉석에서 오케스트라도 만들고 축구팀도 꾸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프랑스 고교는 학군 내 거주 학생을 먼저 80% 뽑고 나머지 20%를 특별 전형으로 선발한다. 두 학교도 마찬가지다. 중학교 교사인 카밀 엘렌은 “두 학교에 입학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녀를 두 학교에 넣으려고 해당 학군의 다락방이라도 구하려고 애쓰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특별전형 20%는 전국 인재들이 몰려 경쟁한다. 대부분은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고, 최고 중의 최고들만 교장 면접을 거쳐 입학한다. 부모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앙리Ⅳ 학부모의 경우 대기업 임원이나 의사·변호사 같은 자유 직종이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해 인재 육성을 위해 학군제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완전 경쟁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앙리Ⅳ와 루이 르 그랑 등의 경쟁력을 더 키우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공부 못하는 학생들만 모이는 학교는 일찌감치 ‘패배자 집단’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많아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두 학교의 학생들은 별도 전형을 치르는 최고 대학인 그랑제콜 입학을 원하기 때문에 다른 고교 학생들과는 달리 치열하게 공부한다. 프랑스에선 극히 드물게 시간당 100유로(약 15만원)나 하는 고액 과외까지 받는다. 학생들은 3년 내내 도서관에서 산다. 교사들도 매우 철저하게 준비하고, 방과후에는 교사와 학생 간 일대일 교습이 실시된다.

대학생인 뱅상 페랭은 “프랑스 사람이 모두 놀아도 루이 르 그랑과 앙리Ⅳ 학생만 열심히 공부하면 프랑스가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시험을 앞두고 교사가 추천한 책이 통째로 없어지거나 중요 부분이 찢겨져 나가기도 했다. 지나친 경쟁에 지쳐 자퇴하는 학생도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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