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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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튿날은 등산하기에 알맞은 맑은 날씨였다.더위를 누비고 바람도 간간이 불었다.
최교수도 날씨처럼 경쾌했다.
블루 진 모자에 블루 진 바지,빨간 테 선글라스에 빨간 셔츠차림,여교수가 아니라 여대생처럼 보였다.
『참 젊어보이십니다.』 『어머,무슨 실례의 말씀을!이래뵈도 젊은이인걸요.』 아버지의 인사에 최교수는 어리광부리듯했다.
『각별히 주의해서 잘 모시게.』 『알겠습니다.』 장인에게 공손히 머리 숙이고나서 남편은 최교수의 식물채집 상자와 도시락 바구니를 들었다.
아리영은 내키지 않았다.어제부터 달거리가 시작됐다.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무거웠다.
그러나 두사람만 보낼 수는 없었다.어쩐지 불안했고,예의상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산길을 10분쯤 오른 곳에 붉은 지붕의 통나무 집이 나타났다.야트막한 통나무 울타리 아래 목장이 펼쳐져 있다.
『예쁜 집인데요.』 『목장의 산장(山莊)입니다.여기까지가 우리 목장 영역이지요.』 남편이 설명했다.
『아버님이 가끔 여기서 지내시지요.책도 보시고,젖소도 관찰하시고….여기선 목장이 한눈 아래 보이니까 젖소들이 어떻게 행동하나 잘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젖소들은 대체로 유순하죠?』 『그렇지만도 않습니다.꼭 한두마리씩은 말썽피우는 문제 소가있지요.그런가 하면 반드시 지도자 소도 나타납니다.점잖고 잘 생긴 소가 지도자 소지요.』 『지도자 소는 누가 뽑는데요?』 최교수는 호기심이 강하다.
『누가 뽑아서 되거나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됩니다.인간사회에서도 그렇지않습니까? 지도자란 스스로 되는 것이지 누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닌가 봅니다.』 남편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아리영은 처음 보았다.
『정말 그래요.
옳은 말씀이에요.』 최교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바람이 통하게 열어놓고 가야겠습니다.
이따가 내려오면서 닫지요.』 남편은 산장의 창문을 열고 등산길에 올랐다.험한 산길은 아니었으나 군데군데 개울을 건너야 했다.남편이 먼저 건너가서 손을 뻗쳐 아리영과 최교수의 손을 잡아당겼다.
『손이 따뜻하시네요.』 최교수의 말에 남편이 얼굴을 붉혔다.
솔직하다 할까 명랑하다 할까,이렇게 스스럼없는 여성도 드물다.
최교수는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했다.
『전나무여,전나무여,변함없는 그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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