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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직무정지] 방송 보도 공정성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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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탄핵안 가결 다음날인 13일 KBS-1TV는 오전 8시30분부터 밤 1시30분까지 17시간 동안 6시간을 제외하고는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모두 탄핵 관련 프로그램으로 채웠다. 탄핵의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는 내용보다는 탄핵안 가결 당일의 격렬한 몸싸움 장면과 탄핵 반대 시위현장을 반복해서 방영했다.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에는 13일과 14일 "탄핵됐다고 나라가 갑자기 망합니까. 국민들 동요하게 편파 방송을 하지 맙시다"(김일환.KBS 시청자센터 게시판) 등의 의견이 잇따랐다.

12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엄기영 앵커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개별적인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비리로 점철된 16대 국회는 이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켰다"며 뉴스를 시작했다. KBS.MBC 뉴스와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탄핵에 반대하고 야당을 성토하는 전문가 발언과 시민 인터뷰가 주종을 이뤘다.

◇'금융 공황' '북핵보다 심각'=탄핵안이 가결된 12일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국민의 분노와 이로 인해 빚어질 혼란.불안을 크게 다뤘다.

KBS는 메인 타이틀 6개 중 4개를 '국정운영 초비상''주가 폭락, 금융시장 공황''혼란 장기화 땐 신용도 추락''전국 경찰 비상경계 근무' 등으로 잡았다. MBC도 '증시 폭락, 검은 금요일''정치불안, 북핵보다 심각''미국, 한국 사회 분열 우려''대전, 국정공백 우려'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반면 SBS 8뉴스는 '데스크 리포트'를 통해 안정을 강조하며 "차분히 대응하면 혼란은 없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SBS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그나마 SBS 뉴스가 제일 중립적이네요"(정대성) 등 격려성 글이 많이 떴다.

KBS가 13일 긴급 편성한 탄핵 관련 특집 프로그램들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탄핵 반대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되풀이해 보여줬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전국의 탄핵 반대 시위현장을 내보냈다.

◇야당 비판 50건, '대통령 책임' 11건=KBS가 13일 방영한 탄핵 관련 특집 프로그램 가운데 '특집 대통령 탄핵, 국민은 말한다'의 경우 출연한 네명의 패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탄핵의 책임을 야당에 돌렸다.

"의회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충남대 박진도 교수), "대통령이 아니라 야당이야말로 헌정주의에 도전한 행위"(연세대 김호기 교수)라는 발언이 나왔다.

패널 선정 면에서는 2대 2로 균형을 맞춘'특집 탄핵 대한민국 어디로 가나'에서는 2시간40분의 방송시간 동안 내보낸 전체 63건의 시민.방청객 인터뷰 가운데 탄핵의 책임이 야당에 있다는 내용이 50건이었다.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인터뷰는 11건, 양비론적인 내용은 2건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또 2001년 야당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검토한다는 뉴스 화면과 이에 반발하는 민주당 한화갑.김중권.박상천 의원의 인터뷰 장면, 당시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전용학 의원의 야당에 대한 사과 요구 논평 자료화면을 내보냈다.

이와 함께 "얼마 뒤 전의원은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이번 탄핵에 찬성했다"는 내레이션을 내보냈다.

내레이션은 "소신 변화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라고 이어졌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15대 선거에서 우리 당을 직접 지원할 것"이라는 발언과 "대통령 정치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당시 신한국당 박헌기 의원의 입장을 보여준 뒤 "지금은 꽤 다르다""불과 수년 전 발언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고 맺었다. 진행을 맡은 송지헌 아나운서는 "정치인의 말과 신념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곳(헌법재판소)에선 법적인 판단을 하니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는 盧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그러나 야당이 탄핵 발의 이유로 제기한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 등은 방영하지 않았다.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김우룡 교수는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탄핵 사태에 대해 KBS 등이 여론몰이에 앞장서고 있다"며 "공영방송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라고 주장했다.

◇"현장 민심 반영한 것"=KBS 이규환 기획제작국장은 "5대 5의 기계적인 균형이 민심을 반영하는 게 아니다"면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7대 3의 비율을 맞추는 방향으로 인터뷰 수를 조절했다"고 말했다.

李국장은 "토요일 오전엔 다소 격앙된 분위기가 나타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차분해져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을 보면 어제와는 다르다"며 "13일 오전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은 찬반을 가리기 위한 토론 프로그램이 아닌데다 다른 의견을 가진 패널을 섭외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료화면들에 대해서는 "탄핵의 역사를 보기 위한 것이고, 역사를 얘기하는 것은 종합적인 판단을 하기 위한 좋은 자료"라며 "제작진은 특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혜리.이상복.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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