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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豊백화점 붕괴 문제점.교훈 무엇이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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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방자치관련 4대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일관되게 내세운 공약은 보다 높은 「삶의 質」이었다.그런데 그 공약의 메아리가 채흩어지기도 전에 수백명이 떼죽음 당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또나고 말았으니 「삶의 質」을 높인다는 그 공약 들이 허망하게 느껴질 뿐이다.
정치권에서 우리사회의 미래상을 복지사회로 그려가기 시작하면서「삶의 質」이라는 단어도 더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삶의 질」,좋은 말이다.
재래식 변소를 수세식 변소로 바꾸고 재래식 시장을 고급 백화점으로 바꾸고 코로나 택시를 그랜저 모범택시로 바꾸고,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더 좋은 것들로 바꾸는 것.
이 정도는 너무 피상적이고 일차적인 이해라고 반박할 사람들이많을 것이다.
삭막한 대도시를 문화도시화하고 건강.레저시설이 확충된 지방사회를 이룩하는 것 같은 미래지향적 청사진도 분명 포함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미빛 청사진의 문제점은 그 것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다른 모든 이상들처럼 실감이 덜하고 그 개념 역시 모호하다는 것이다.청사진이라면 더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것이어야 한다.
성수대교 붕괴.아현동 가스폭발.대구지하철 폭발.삼풍백화점 사고로 이어지는 사고마다 수없이 나타난 희생자들의 애처로운 죽음을 접하면서 이제 정치가들도 그들이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는「삶의 질」만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히려「죽음의 質」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우리 조상들은 개죽음이라 불렀다.「비명횡사(非命橫死)」라는 단어의 속뜻에는 충분히 더 살수 있는 사람이 하찮은 이유로 귀한 목숨을 잃음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서려 있다.
누구나 맞아야 할 죽음에 질을 따진다는 것이 한편 우습기도 하지만 3세짜리 아이와 저녁 찬거리 사러 슈퍼에 들렀다가 콘크리트속에 묻혀버린 20대 주부의 죽음은 우리사회가 막지못한 낮은 질의 죽음이다.뿐 만이랴,버스타고 성수대교 건 너 학교에 가다 추락사한 여고생의 죽음,아현동 전셋집에서 몰사한 일가족의죽음,자전거로 등교하며 엄마에게 손흔들어 인사한지 5분도 못돼수십m 하늘로 치솟다 떨어진 대구 어린 중학생의 죽음등 사고로얼룩졌던 어제 오늘의 죽음들은 우리 사회가 특히 부끄러워해야 할 죽음들이다.
사회에서 낮은 질의 죽음이 자주 일어날수록,그리고 그런 죽음을 방지하는 사회장치가 미비하면 할수록 그 사회는 겉이 아무리화려해 보여도 후진사회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러므로 국민총생산(GNP)의 증가와 무관하게 후진적인 사회다.
복지사회 운운의 정치공약이 허망하게 들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복리정책 세우는 잣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중하나인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명저에서「행복의 최대화」라는 공리주의의 고전적 원칙을 불분명하다고 따끔하게꼬집었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고통의 최소화」라는 입장이다. 행복이 무엇을 뜻하는지에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인간의 고통에 대해선 의견일치가 더 쉽다는 이야기다.「삶의 질」을 높여 복지국가를 이루겠다는 사람들에게 포퍼교수의 교훈을 되새기라고 말하고 싶다.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빈번히 일어나는낮은 질의 죽음을 최소화하는 것이며 그 사회구성원의「죽음의 질」이야말로 그 사회를 평가하는 잣대라는 것을 말이다.우리 정치가.행정가들이 이 잣대를 받아들일 때 우리사회는 비로소 구체적인 복지정책을 세울 능력이 생기리라 믿어 진다.
徐廷信〈本社 비상근 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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