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해외칼럼

푸틴 대외정책의 손익계산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새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2~4일 역대 최대 규모의 정상회담을 연다. 놀랍게도 나토는 기구에 가장 비판적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이번 정상회담에 초청했다. 푸틴은 2002년 로마 이후 처음으로 이번 회담에 참석한다.

부쿠레슈티 회담의 주요 이슈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알바니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 등을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옛 소련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 회원국 가입 전 단계인 ‘회원국 행동계획(MAP)’ 지위를 부여할지 확정하는 것이다. 두 가지 다 외부 세력이 아닌 나토 회원국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2007년 2월 독일 뮌헨 국제안보회의에서 푸틴은 서방을 향한 공세적 연설을 했다. 그는 “나토 팽창은 이 기구의 현대화나 유럽 안보 강화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서방과 러시아 간) 상호 신뢰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도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푸틴은 (나토에 가입하려는)옛 소련권 국가들을 위협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푸틴의 이 같은 공격적 태도는 러시아의 대외정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푸틴은 집권 초기 능력있는 외교가이자 중재자로 행동했다. 그러다 2007년 뮌헨 회의를 계기로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반서방 행보를 노골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 연설에서 미국을 나치 독일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신중한 정치인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푸틴의 연설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벨로루시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 국내에서도 푸틴이 세계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 모욕을 주면서 국가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면서도 아무런 이득도 챙기지 못하고 오히려 서방의 반러시아 노선만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대통령이 됐을 때 푸틴은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이후 편협한 보호주의에 굴복해 이 과제를 이행하는 데 실패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목재, 노르웨이의 어류, 리투아니아·우크라이나·몰다비야·그루지야 등의 농산물에 수입제한조치를 취한 것이 대표적 예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국영기업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많은 외국 정부 및 기업들과 독점적 가스 수출 계약을 체결한 러시아 최대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최대 수혜자다. 가스프롬을 통해 개인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크렘린의 고위 공직자들은 국영기업 보호 정책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급을 느닷없이 중단하는가 하면 갑자기 가격을 올리고 경쟁 기업들의 재산을 빼앗는 가스프롬을 러시아 가스의 주요 소비국인 서방은 신뢰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러시아 가스의 유럽 수출량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푸틴의 대외정책은 대중적 국수주의를 부추기기 위한 것임이 명백하다. 대서방 압박 정책은 그의 권위주의 통치에 힘을 실어주겠지만 동시에 그만한 대가도 치러야 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옛 소련에 속했던 많은 국가들이 푸틴의 공격적 외교정책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푸틴 집권기에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크게 진전된 건 사실이지만 이 또한 1969년부터 양국이 분쟁을 빚어오던 두 개 섬을 중국에 양도한 대가다. 게다가 최근 들어선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태도도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그럼에도 러시아에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데는 동감한다. 그러나 그것은 푸틴 대통령이 떠나고 난 다음 일이다.

앤더스 아스룬드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