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사장들 낯뜨거운 성금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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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백화점)들이 성금을 얼마낼지 투표합시다.10억원,7억원,5억원 등 3개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지난 5일 한국백화점협회에 모인 백화점사장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상자에 대한 성금을 얼마나 낼까를 놓고「무기명 비밀투표」를 했다.
결과는 3개안중 가장 적은 5억원으로 결정됐다.
연간 매출2조원이 넘는 백화점을 포함해 37개 대형백화점이 5억원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당초 사고발생 다음날 열렸던 긴급대책회의에서 이들 백화점 사장이 내기로한 성금액수는 1억원이었다.한데 지방의 한 백화점 회장이 참사현장을 둘러본후 개별적으로 1억원을 희사하는 바람에액수를 늘리지 않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같은 5일의 무기명 비밀투표소식이 전해지자 각 백화점 직원들은 씁쓸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구호품을 들고 뛰어 가는 판에 막상 백화점업계의 대표들이 성금액수를 정하지 못해 무기명비밀투표를 하다니 낯이 뜨겁다』고 한 백화점직원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삼풍」붕괴이후 백화점업계 종업원들은 하나같이 침울해 하고 있다.
전세계를 경악케한 사고가 바로 동업자에 의해 일어났을뿐 아니라 평상시 자기들이 일하는 백화점의 영업행태를 볼 때도 결코 나몰라라 할 성질이 아닌 까닭이다.
비단 성금문제만이 아니다.희생자들을 추모하는「애도의 날」을 정하자고 해놓고는 막상 날짜를 결정하지 못한채「대책회의」를 끝냈다.오히려 상관도 없는 시민들이 서울 종묘에 모여 추도대회를가졌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세차례나 회의를 연 끝에 여름바겐세일을 5일간으로 단축키로 해놓고 우리나라 백화점업계 총매출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는 매머드 백화점이 사실상의 사전(事前)세일을 하고 있는 꼴불견이다.
〈柳秦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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