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사망한 日 후쿠다前총리-오일쇼크딛고 경제재건에 功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前일본총리가 5일 낮 도쿄(東京)여자의대병원에서 폐기종(肺氣腫)으로 사망했다.90세.
후쿠다 前총리는 76년 12월부터 78년 11월까지 총리로 재임하면서 안정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펴 1차 오일쇼크 이후 일본경제 재건에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05년 군마(群馬)縣에서 태어나 30년 도쿄大를 졸업,대장성관료 생활을 거쳐 52년 고향에서 중의원의원(자민당)에 당선됨으로써 정계에 입문했다.반골(反骨)기질로 유명한 그는 대장성 선배이기도 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총리시절 불이익을 감수해가며 정부의 소득배가정책에 시종일관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또 최대의 정적(政敵)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前총리와는사사건건 부딪쳐 일본정계에「가쿠후쿠(角福)전쟁」이라는 신조어를낳기도 했다.
그는 재임중 경제재건 외에 韓日대륙붕조약.中日우호조약 체결,나리타(成田)공항 개항 등 업적을 남겼다.78년 자민당총재 예비선거에서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에게 패하자『하늘의 소리도가끔은 이상할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남기고 총리직을 사퇴했다.퇴임후에는 헬무트 슈미트 前서독총리등과 함께 전직 국가수반 모임인 인터액션 카운슬(일명 OB서미트)을 만들어 환경.군축문제 등에 힘써왔다.
총리 재임시 중국과의 우호조약체결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에 대해『오리는 겉보기에 한가해 보이지만 물속에서는 부지런히 물갈퀴질을 하고 있다』는 말로 막후협상이 활발함을 강조하는 등재기넘치는 어록(語錄)을 많이 남겼다.재직중 오 일쇼크 뒤처리,중국과의 조약체결 마무리 등 전임자들의 뒤치다꺼리가 많아 스스로를「소제(청소)총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東京=盧在賢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