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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피아니스트, 화풀이 상담사 꿈꿔 봅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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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32면

‘돈과 일’이 공존하는 노후는 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노후 화두를 떠안고 고민해 온 푸르덴셜투자증권 정진호(54·사진) 사장을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정진호 사장 인터뷰

그는 먼저 ‘꿈’ 이야기를 꺼냈다. “나이 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가끔씩 목록을 적어 봅니다. 제가 즐길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 위주로요.” 1순위로 오른 게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음악 애호가인 그는 평소 피아노뿐 아니라 클라리넷 연주도 즐긴다. 한때는 친구와 재즈바를 인수해 운영했을 정도다.

재정적인 여유 덕에 노후를 풍요롭게 그리는 건 아닐까. 노무라 증권에서도 일했던 정 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일본엔 아소비고코로(遊心)라는 말이 있어요. ‘놀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즐기는 마음으로 꿈을 가지면 일을 할 수 있고, 결국 이기는 사람이 됩니다.”

최근엔 ‘화풀이 상담사’도 목록에 추가했다. 지점을 방문했더니 여직원들이 주가 하락 분풀이를 하는 고객 등쌀에 한약까지 먹어 가며 일하고 있었다. 차분하고 조리 있는 화법을 살려 이런 사람들을 달래주는 24시간 상담실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게 ‘주변’에서 찾은 노후 일거리다. 영화감독인 아들과 영화사를 차려 보고 싶은 생각도 한다. 이건 가족 울타리 안에서 새 일을 도모하는 ‘안방 창업’인 셈이다.

다른 증권사들이 투자은행(IB) 영업을 한다고 난리치는 요즘 그가 이끄는 푸르덴셜증권은 노후설계 중심의 자산관리업에 승부를 걸고 있다. 푸르락도 그래서 탄생했다. 정 사장은 “펀드 가입자들이 일선 창구에서 직면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극약처방’일 때가 많다”고 했다. 청진기도 대보지 않은 채 잘 팔리는 약만 준다는 것이다.

그가 ‘주치의론’을 강조하는 이유다. 증권사건 재무설계사건 자산관리상담사건 노후설계의 건강검진을 통해 깐깐하게 병을 찾아내고, 치료법을 일러주는 전문가를 곁에 두라는 것이다.

정 사장은 “한국인은 큰 그림은 잘 본다. 그러나 오늘 당장의 액션 플랜을 짜는 건 서투르다”고 했다. 하지만 은퇴 준비는 일단 필요자금만 계산해 봐도 마음을 다져먹게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회사에 최고경영자(CEO)로 왔더니 본사에선 ‘오늘은 뭐 할 거냐’는 식으로 세밀화를 요구했어요. 노후자금도 이런 접근방식이 필요해요.”

정사장은 한국인의 노후 준비와 관련해 “무엇보다 지금의 투자 방식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펀드로 노후를 준비하겠다는 투자자는 10%에 그친다는 얘기다. 그는 “가까운 대만도 노후 대비에서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이른다”고 말했다. “의욕은 높지만 각론이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수익률은 최고로 높여달라고 요구하면서, 원금은 깨지면 안된다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1991년 국내 최초의 펀드운용사인 에셋코리아를 세우기도 한 정 사장은 “10년 전만 해도 증권사들이 펀드 시장을 주도했으나, 2002년부터 은행이 주연배우가 됐고, 앞으로는 또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자산관리사 같은 전문가들이 노후 시장의 첨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이런 서비스에 올라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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