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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영웅은 왜 가시밭길을 선택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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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헤라클레스
이윤기 글, 최용호 그림,
아이세움
176쪽, 9000원,
초등 고학년

워낙 영어를 부르짖는 시국이다 보니 영어 표현부터 하나 짚고 넘어가보자.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뜻의 관용구인 ‘the choice of Hercules’란 무슨 뜻일까? 사전을 펼쳐보자. ‘안일을 버리고 고난을 택함’이라고 나와있다. 왜 그럴까? 그리스·로마 신화로 각광받은 저자 이윤기가 어린이 독자를 위해 펴낸 『헤라클레스』에 답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바람둥이 신 제우스가 인간 세상의 여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헤라클레스는 가장 힘이 세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영웅이다. 그런 그를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 여신이 어여삐 여겼을 리 없다. 헤라 여신의 해코지로 자신의 아내와 세 아들을 때려죽인 헤라클레스가 죄를 씻기 위해 찾아간 곳, 아르고스. 나라의 걱정거리를 해결해주겠다고 자처한 그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광폭한 사자를 처치하는 일이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던 길, 헤라클레스는 갈림길에서 두 여인을 만난다.

한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고통을 겪지만 결국 그것이 영광의 길입니다.” 다른 여인이 받아 쳤다. “아닙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편안하고 사치스러운 길이 있습니다.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이라면? 헤라클레스는 첫 번째 여인을 따라 나섰다.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관용어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책에는 모두의 영어 표현을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역시 이런 배경을 알아두면 교양도 쌓일 뿐 아니라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터다.

이리하여 고난을 선택한 헤라클레스가 걸어가는 길은 역시나 가시밭길. 지은이는 자신의 특기인 신화지식을 발휘,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 독자도 영웅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한다. 속도감 있는 대화체 글은 읽는 재미를 더하고, 박력 있는 삽화를 시원스럽게 덧붙여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 28쪽의 ‘비밀에 붙이다’와 같은 오타(‘비밀에 부치다’가 옳은 표현)은 옥에 티다. 그래도 꾀를 써서 머리가 10개인 물뱀 히드라를 처치하고, 하늘 축을 어깨에 이고 있는 아틀라스를 속여 헤라 여신의 황금사과를 훔쳐오는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듯. 하지만 역시 께름칙한 한 가지. ‘아마조네스 여왕이여, 허리띠를 풀어라’와 같은 제목이다. 어딘가 마뜩하지 않은데, 때묻은 어른의 눈으로 봐서 그런가? 판단은 독자의 몫. 저자는『헤라클레스』를 필두로 괴물 메두사를 처치한 영웅 페르세우스 등의 영웅담을 시리즈로 펴낼 예정이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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