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현장서 극적구출뒤 숨진 李恩英양 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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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렇게 갈 수는 없어.얼마나 예쁜 아이였는데….』 사고발생71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이은영(李恩英.21)양이 온국민의환호와 가족.친지의 간절한 바람에도 끝내 숨진 강남성모병원은 2일 오후부터 한맺힌 통곡의 울음바다로 변해버렸다.
의료진 20여명이 달라붙어 2시간30분여동안 구명(救命)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세상을 하직,실낱같은 희망을 걸고있던 다른 실종자가족들까지 비통에 잠기게 했다.
『아이고,그토록 어렵게 구조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갈 수 있느냐.이 못된 것아.부모가슴에 못질을 해놓고….』 심장이 약해실신을 거듭한 어머니 孫희만(43)씨의 피맺힌 절규에 나흘간 잠 한숨 못자고 딸을 찾아 헤맨 아버지 이정규(李正圭.46.자영업.서울동대문구장안동)씨는 넋나간 사람처럼 먼 허공만 바라보았다. 동생 진호(19)군은 무너져내리는 가슴을 애써 쓸어안고부모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하다 끝내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못하고 오열했다.
『누나아….』 李씨는 29일 오전7시40분쯤 삼풍백화점으로 아르바이트 근무를 떠나는 은영양에게『아가,무리하지 마라』고 했다.그 한마디가 딸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사고 이틀째 한가닥 희망의 빛이 보였다.사고발생 16시간만에구출된 질녀 권은정(權恩靜.22.삼풍직원)양이『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은영이가 살아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구조대원과 대원외국어고 교사 洪씨등의 李양 생사여부에대한 증언이 엇갈려 李양 부모는『시체라도 찾아야 한다』며 시내20여개 병원 영안실을 모두 찾아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은영양을 찾을 수 없었다.
1일밤 李씨는『사람 소리가 들린다』는 자원봉사 구조대의 제보와 權양이『은영이가 살아있음이 분명하다』고 확신하자 구조작업을시작해 줄 것을 사고대책본부에 애타게 호소했다.
12시간에 걸친 필사의 구출작업으로 드디어 2일 오후5시쯤 은영양이 구출됐다.
하지만 중화상과 호흡곤란등으로 결국 은영양은 구출 2시간30분만에 숨을 거뒀다.
『대책반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조금만 더 일찍 손을 썼으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 지울 수 없는 아쉬움으로 분통을 터뜨린아버지 李씨는 촛불 두개만 쓸쓸히 타오르고 있는 빈소에서 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내 예쁜 딸 은영아,잘 가거라.』 〈金俊賢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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