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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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천길 높이 벼랑에 핀 철쭉을 꺾어 달라니 이런 철없고 방자한미인이 어디 있는가.이야기는 처음부터 사건을 예고하고 있다.
『마침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 하나가 수로부인(水路夫人)의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노래까지 지어 함께 바쳤다.그러나 그노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젊은 장정도 오르지 못한바위 벼랑에서 꽃을 꺾어와 바쳤다는 이 노인은 대체 누구인가.
『그 뒤 이틀을 편히 가다가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들고있는데 갑자기 용(龍)이 나타나더니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버렸다.순정공(純貞公)이 땅에 넘어지면서 발을 굴렀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했습니다.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계내(界內)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기슭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공이 그대로 했더니 용은 부인을 모 시고 나와 바쳤다.공이 바닷속의 일을 묻자 부인이 대답했다.「칠보(七寶)궁전이었습니다.
음식은 달고 매끄러운데다 향기롭고 정결해 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는 이상한 향기가 배어 있었다.이 세상 것같지 않았다.수로부인은 뛰어난 미모 때문에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렸다….』 「신물」이란 귀신이라거나 바다의 용이라거나 깊은 산의 짐승이라거나큰 못에 사는 큰 구렁이 같은 영물(靈物)을 뜻한다.아마도 그언저리를 지배하던 세력가를 상징했을 것이다.수로부인은 이들 힘있는 사나이에게 잡혀가 번번이 욕을 보았 다는 얘기가 된다.
『백성들이 부른 해가(海歌)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거북아,거북아,수로를 내놓아라.남의 여자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리.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 한편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자줏빛 바윗가에 암소 잡은 손 놓으시고 나를 부끄러워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는 노래였다.』 이 두 노래 모두 이상하다고 아리영은 생각했다.
「해가」만 해도 그렇다.용을 향해 「거북아,거북아…」라 부른것은 무슨 까닭인가.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엔 「구지가(龜旨歌)」가 등장한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이 김해를 처음 점령할때 사람들로 하여금 구지봉(龜旨峯)에서 부르게 한 노래다.
「거북아,거북아,머리를 내놓아라.만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해가」는 이 「구지가」의 패러디,즉 바꿔부르기 노래인 셈이다.수로부인을 내놓으라며 왜 「구지가」의 패러디를 부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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