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칼럼>IOC 사마란치시대 有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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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제10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6월15일)에서 위원의 정년을 80세로 연장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국내외 보도는 매우 신랄했다.그 표적은 당연히 후안안토니오 사마란치(75)위원장이었고 정년연장은 그의 종신집권을노린 노회한 음모라고 지적했다.경위야 어찌됐든 사마란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임기만료인 97년 이후에도 IOC의 총수로 군림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놓은 셈이다.
IOC 1백년사를 통해 가장 걸출하고 존재감 있는 위원 장은50,60년대를 풍미한 20년 장기집권의 에이버리 브런디지(미국)와 사마란치 현 위원장을 꼽을 수 있다.올림픽운동의 기수로서 두 사람이 택한 길은 너무나 대조적이며 동시에 각각 한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미스터 아마추어리즘으로 불리는 브런디지는 스포츠와 돈의 함수관계인 프로스포츠를 철저히 외면,아마추어의 순수성을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로 인식하고 올림픽의 성역화에 전력투구한 입지의 인물이며,사마란치는 시대변화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져야 할뿐아니라 스포츠도 능력개발에 따라 응분의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현실론자로 올림픽의 물꼬를 새로운 시각으로 튼 주역이다.
근대올림픽은 지난 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를 계기로 그 면모를일신했다.올림픽에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경영기법과 자원봉사자제도를 활용함으로써 일거에 흑자대회로 전환시켰고 88년 서울,92년 바르셀로나대회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 되자 올림픽 유치는 가장 성장력있는 국가적 사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72년부터 8년간 킬러닌위원장 시대가 브런디지.사마란치 시대의 완충지대라 한다면 브런디지 시대의 권위주의적 청빈과 명예,사마란치 시대의 상업주의적 풍요와 영광은 나름대로 시대상을 반영한 올림픽의 위상으로 정착된 셈이다.한사람의 지 도자가 지닌철학이나 가치관이 얼마나 영향력있게 역사에 각인되는가를 우리는올림픽의 발자취를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IOC위원은 1894년 15명으로 출발해 브런디지의 70년대엔 70명으로,지금은 1백97개 회원국 1백6명으로 늘어난 것을 보면 올림픽은 너무 비대해졌고,또 그만큼 문제도 많아졌다는증거다.사마란치의 개혁적인 올림픽이 대단한 성공 을 거둔 것은사실이지만 브런디지 시대의 어딘가 범하기 어려운 고고함과 당당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는 적막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물질보다는 정신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야 하는 스포츠의 야성이 설땅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대올림픽이 결국 부패와 방탕으로 자멸했듯 매수.약물.타협.타락.퇴폐의 함정은 성공적인 올림피아드일수록 기를 쓰고 기생한다는 것을 역사는가르치고 있다.사마란치위원장이 위원장직을 얼마동안 유지할 것인가 보다는 올림픽 1백년을 어떻게 정리하고,어떤 가치체계로 새로운 한 세기를 맞이할 것인가에 관심이 간다.스포츠,특히 올림픽의 상업주의로의 폭주는 스포츠의 기본바탕인 정신을 물질이 잠식함으로써 천민올림픽으로 함몰할 가능성을 잉태하기 때문이다.그것은 고대올림픽 전철을 밟는 길이기도 하다.
〈언론인.KOC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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