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또 끌려 다닌 기아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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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우여곡절 끝에 기아자동차의 생산라인은 멈추지 않았다. 기아차 노조는 25일 오전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며 “이날 오전 계획했던 경기도 소하리·화성·광주 등 3개 공장의 전면파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파업을 결의한 지 12시간 만이었다. 우려했던 파업은 없었지만, 이번에도 노조의 요구에 끌려 다닌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파업 결의에서 유보 선언까지=노조의 무기한 파업 결의는 지난해 9월 회사가 GE캐피탈을 통해 2500억원을 조달한 것이 빌미가 됐다. 노조는 당시의 파이낸싱 방식이 담보 제공을 통한 대출이 아니라 사실상의 설비 매각 계약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인력 감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를 노조에 알리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됐다.

사측은 노조가 대의원대회를 통해 파업을 결의한 24일 밤 노조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GE캐피탈코리아 대표이사 명의의 확인서를 노조에 제시했다. 소하리 공장 기계설비의 소유권은 기아차에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내용이다. 또 노사가 법적인 공증 절차를 거쳐 기아차에 소유권이 있음을 재차 확인키로 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리스 계약에 따른 2500억원을 당장 상환할 것을 요구했다. 3년 만기의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안에 분기별로 전액을 상환하겠다고 노조에 약속했다. 이후 기아차 노조는 파업 결의를 사실상 철회했다.

◇끌려 다닌 사측=기아차 노조가 25일부터 파업을 했다면 명백한 불법파업이다. 임시 대의원대회를 통해 무기한 전면파업을 결의했을 뿐 조합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찬반투표 절차도 없었다. 송호창 기아차 노조 정책3실장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져 총파업을 유보했다”며 “파업을 실행할 경우 불법인지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겠다. 결과만 봐라”고 말했다.

노사문제 전문가들은 기아차 노조가 처음부터 불법파업을 할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미리 손을 들었다. 2년 연속 적자를 내고 이제 막 정통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와 신개념 경차 ‘모닝’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려는 순간 파업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사측의 한 관계자는 “불법파업에 엄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내부의 의견도 있었지만 판매 신장세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심재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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