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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격 통제는 후진국에서나 있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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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학원비와 소주, 고등어 등 52개 생활필수품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다. 정부는 이들 품목의 가격을 모니터링하되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하지 않겠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특별관리 품목을 지정했는지 의문이다. 물가 불안에 손 놓을 수도 없고, 군사정부처럼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는 정부의 난처한 입장으로 이해된다.

물론 세계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해 가격 통제를 실시하는 나라들도 있다. 중국은 석유·곡물·식용유·고기의 값을 올리려면 반드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태국은 국수와 식용유 값을 통제하고, 인도네시아는 국영업체에 쌀값 동결을 지시했다. 러시아도 빵·계란·우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개발도상국가라는 점이다. 절대빈곤층이 많아 당장 ‘배고픈 민심’을 겁내는 나라들이다. 또 하나, 가격 통제의 후유증을 앓는 것도 공통점이다. ‘기름이 떨어졌다’ ‘쌀·식용유 품절’이란 간판을 내건 주유소와 가게들이 속출하고, 사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 최대 정유사인 페트로차이나의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이에 비해 선진국들은 가격에 손댈 기미가 전혀 없다. 금리·환율 같은 거시변수들은 조정하되, 가격은 전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있다. 1차 오일쇼크 때 가격 통제를 했다가 공급이 감소해 인플레 상황을 악화시킨 쓰디쓴 교훈 때문이다.

새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 통제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규제 완화와 할당관세 인하 등을 통해 비용상승 압력을 최대한 줄이면서 세계시장의 수급이 풀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는 이번 인플레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불가피한 고통이라면 충분히 참고 견뎌낼 수준은 된다. 정부가 오히려 국민을 믿고 성급한 개입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눈앞의 성과가 달콤해 보여도 가격 통제는 더 큰 부작용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