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을 가르며 … 관광 태안 푸른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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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지도 어느덧 100일이 훌쩍 지났다. 자원봉사자들의 발길 덕분에 태안은 서서히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젠 태안주민의 생계와 지역경제를 위해 관광객의 발길이 절실하다. 적선하는 셈치고 놀러오라는 말이 아니다. 안면도는 방제작업을 마치고 아름다운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특히 안면도 해안과 하늘을 누비는 초경량 항공기와 동력행글라이더가 짜릿한 주말을 준비하고 있다.

난 17일 찾아간 안면도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재앙’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지점인 만리포 부근은 갯벌을 파내면 아직도 기름 층이 두텁다지만 안면도는 겉보기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이 일궈낸 기적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주민들이 겪는 후유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안면도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서울살이를 하다 몇 년 전 다시 귀향한 박철한(44)씨는 “안면도는 만리포 인근보다 피해가 심하지 않아 방제작업도 열흘 사이에 끝나고 본 모습을 많이 회복했다”며 줄어든 관광객에 아쉬움을 토했다. 박씨가 ‘안면도여행이야기’라는 여행사를 차리고 꽃지 해수욕장 등에서 갯벌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던 차에 기름유출사고가 터졌다. ‘대박’라고 생각했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쪽박’ 신세를 면치 못했다.
 
면도 해안을 나는 초경량 항공기
하지만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방향을 선회했다. 맥없이 하늘을 보다가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떠가는 것을 목격하고 ‘이거다’ 싶었다. 인근 한서대학교의 항공교육원에서 날아온 초경량 항공기였다. 곧 한서대학교 항공교육원의 안철민(41)교수와 손잡고 초경량 항공기 체험비행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은 체험비행이나 비행교육을 요청하는 이가 많지 않다. 안 교수는 21세기는 첨단 사회로 진화해 가는데 유독 국내 민영 비행산업만은 몇 십 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자동차는 계속 발전하고 수요도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지만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초경량 항공기나 경비행기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이죠. 사실 자동차 운전처럼 누구나 정규교육과정만 거치면 초경량 항공기를 운전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위험하다고 치면 자동차 사고 역시 치명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독 자동차 운전에 대해서만큼은 안전 불감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관대하다. 초경량 항공기에도 낙하산 등의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규정을 어기고 무리하게 운전하지만 않으면 안전하다.
  태안에서 인천까지, 혹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초경량 항공기를 이용해 이동할 수도 있다. 하루 전에만 각 지방항공청에 비행계획서를 제출하고 승인받으면 된다. 전국 20개가 넘는 비행장에서 이•착륙할 수 있다.
단지 레저뿐 아니라 운송수단으로서도 유용하다. 초경량 항공기의 가격은 3000만~ 1억 5000만원 선. 수입 자동차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렌터카처럼 초경량 항공기를 빌려서 탈 수 도 있다. 안면도로 나들이 나선 여행객들은 직접 조종하지 않더라도 체험 비행을 해볼 수 있다. 안 교수가 대표로 있는 씨웨스트항공(주)에서는 초경량 항공기뿐 아니라 공군 훈련용 비행기로도 손색없는 즐린(Zlin)으로 곡예비행까지 체험할 수 있다. 공군에서 13년간 전투기 조종을 했던 안 교수가 직접 비행에 나선다.
  안면도 하늘을 수놓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동력 행글라이더다. 행글라이더 날개에 엔진과 프로펠러를 장착한 형태로 쉽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다. 날개가 행글라이더와 같아서 비행 중 엔진이 꺼져도 행글라이더처럼 활공이 가능하다. 또 이•착륙 거리가 짧아 안정감 있고 기체를 덮고 있는 것이 없어 하늘을 날며 부딪치는 바람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초경량 항공기처럼 높이 오르지는 못하는 대신 익사이팅한 느낌이 강하고 운전법이 비교적 간단하다. 이 역시 체험 비행이 가능하다.
 
처 딛고 일어서는 해변으로 주말 나들이
안면도에는 꽃지해수욕장 외에도 넓은 백사장을 품고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해수욕장이 10개가 넘는다. 샛별 해수욕장에서 장삼포 해수욕장, 거기서 또 바람아래 해수욕장까지, 차로 채 5분도 가기 전에 속속 나타나는 해수욕장은 여행객의 춘심(春心)을 들뜨게 한다.
하나하나 둘러보니 대부분 기름유출사고의 흔적도 말끔히 가신 모습이다. 천수만 쪽은 만(灣) 형태여서 기름 피해를 별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식당에 들어가 우럭 매운탕을 시켜 먹었다.
  “이거 여기서 잡은 거 아니죠?“ 기자의 조심스런 질문에 식당 주인은 너털웃음으로 받아친다.
  “기름 뜬 바다에서 잡은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드이소. 여그 사람들은 맨날 먹는 거라예.”
  안면도의 일몰은 여전히 황홀하다. 안면도 주말여행은 하늘과 바다를 모두 껴안을 수 있는 ‘아름다운 비행’이다.

프리미엄 이송이 기자
사진=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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