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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재미교포 2세 감독 리 아이작 정 대서특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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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르완다 내전을 다룬 데뷔 영화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재미교포 2세 리 아이작 정(한국명 정이삭·29·사진) 감독이 미국 뉴욕 타임스(NYT)에 대서특필됐다. NYT는 23일자에서 정 감독이 만든 저예산 영화 ‘문유랑가보(사진)’가 26일부터 뉴욕 링컨센터와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리는 ‘뉴 디렉터스, 뉴 필림스’ 영화제에 초대된 것을 계기로 그의 작품 세계와 제작 과정 등을 두 페이지에 걸쳐 집중 조명했다.

문유랑가보는 1994년 발생한 르완다 내전을 배경으로 인종 학살과 복수, 그리고 용서를 다룬 작품이다.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하면서 부모를 잃은 소년 문유랑가보가 복수의 길을 떠났지만 결국 자비를 배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문유랑가보는 르완다어로 ‘최고의 전사(戰士)’를 뜻한다.

정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됐다. 그 뒤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토론토·베를린·로스앤젤레스 등 10여 개 영화제에 초대돼 많은 상을 받았다. 불과 3만 달러(약 3000만원)의 지극히 적은 돈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이 호평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서구인이 아닌 현지인의 시각에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출연 배우 모두가 현지에서 오디션으로 뽑은 아마추어들로 채워졌다. 배우들의 대사도 모두 현지 르완다어다.

정 감독은 지난해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르완다인을 위한 르완다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NYT도 “‘호텔 르완다’ ‘4월의 어느 때’처럼 많은 예산을 투입한 다른 르완다 영화와는 달리 문유랑가보는 94년 인종학살을 직접적으론 다루지 않았다”며 “서구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선량한 (백인) 대리인’을 등장시키는 것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정 감독이 이 영화를 찍게 된 계기는 2005년 결혼한 부인이 제공했다. 홍콩 출신으로 예술 심리치료사인 부인 발레리는 지난 4년간 여름마다 르완다에 가서 자원봉사를 해왔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동행을 부탁, 부부가 함께 르완다에 가서 참혹한 내전으로 상처받은 현지인들을 도와왔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르완다에서 현지인들에게 영화를 가르치다가 르완다인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 9 페이지짜리 짤막한 시나리오를 썼다. 그 뒤 절친한 친구인 사무엘 앤더슨과 함께 11일 동안 르완다 현지에서 촬영해 작품을 완성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양친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되기 위해 예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해 유타대에 진학, 영화를 공부해 감독이 됐다.

그는 현재 동료인 앤더슨과 함께 ‘운 좋은 삶 (Lucky Life)’이란 두 번째 작품을 찍고 있다. 미국 시인 제럴드 스턴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이 영화는 우정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정 감독은 “한국인 영화인과 공동 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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