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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이 우리 품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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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07면

1 고산자교에 설치된 정보원씨의 설치물 ‘투명함’2 여의도 공원에서 사람들을 맞는 서정국·김미인 작가의 ‘신종 생물-플라이핑’

“도시가 미술관이 되면, 그 안에 사는 시민들의 일상이 예술이 되지 않을까요?” 박삼철 서울시 도시갤러리 추진단장의 첫마디는 명쾌하다. 2007년부터 일궈 온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을 1차 마무리 짓는 도록이 발간된 20일, 그는 “저 우뚝 선 거인이 한 걸음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듯, 도시가 우리 품 안에 걸어 들어온 것 같다”며 감회에 젖었다.

-열매 맺는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박 단장이 말한 거인은 서울 신문로 1가 흥국생명보험 빌딩 앞에 서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다. 2002년 여름, 서울 시민들 앞에 그 위용을 드러낸 ‘망치질하는 사람’은 설치미술가 겸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의 공공미술 작품.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등 세계 유명 도시 한복판에 서서 노동의 존엄성을 말없이 웅변하는 국제적인 랜드마크다. 하지만 서울의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동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다른 도시의 거인들은 그 크기나 몸집에 걸맞게 충분한 공간과 시계(視界)를 확보한 곳에 섰으나 서울의 거인(키 22m, 몸무게 50t)은 건물 안쪽으로 너무 들어가 선 탓에 제대로 시민과 만나지 못해 왔다. 그 ‘망치질하는 사람’이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의 공공미술 특구로 지정돼 거리로 한 발(4.8m) 걸어 나오게 된 것이다.이뿐이 아니다. 네덜란드 건축 집단 ‘메카누(Mecanoo Archtecten)’가 거인 주변에 시민공원을 만들어 도시를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길거리 쉼터를 조성한다.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도서관을 설계한 ‘메카누’는 특정 터를 설계의 풍요로움으로 해석해 감성 넘치는 공간으로 만드는 디자인 철학으로 유명하다.

3 지하철 합정역 기둥을 장식한 최광호씨의 퍼블릭 포토 ‘선물’ 연작4 시민에게 활력을 주는 색 잔치로 명소가 된 옥수역사의 이상진 작 ‘화분’

공원 앞에 있던 버스정류장 또한 건축가 하태석씨가 시각적 역동성을 살린 아트셸터 ‘흐름’이란 작품으로 변신시킬 예정이다. 기다림·쉼·정보·빛·만남 등 도시의 정서와 리듬을 실어 10개의 고리로 만든 버스정류장은 선적 율동감으로 ‘망치질하는 사람’의 움직임과 조응하게 된다.

5 인사동 입구의 랜드마크이자 포토스페이스 구실을 하는 윤영석씨의 ‘일획을 긋다’

새문안길 일대가 서울의 새 명소로 거듭나는 셈이다. 3월 말 공사에 들어가 5월 완공 예정으로 딱딱한 도시를 부드럽고 서정적인 삶의 터로 전환하는 한 예가 될 것으로 보인다.도시갤러리가 추진해 온 지역별 시범사업은 서울시 전역에 펼쳐져 있다. 지금이라도 주변을 둘러보시라. 즐겁고 신나는 풍광이 눈길을 붙잡는다.추억의 덕수궁 돌담길을 걷던 이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아트벤치를 만난다. 가구 디자이너 최병훈씨가 만든 ‘예술의 길, 사색의 거리’다. 천연재료를 다듬고 쪼아 직선을 없앤 벤치로 돌담길의 둥지를 빛낸다. 고산자교 옆에 튀어나온 정보원씨의 ‘투명함(Transparence)’은 우리 국토를 두 발로 걸어 지도를 완성한 고산자 김정호의 발품을 기하학으로 재해석하며 지역의 표식과 맥락을 매듭짓는다.

5월 말 시민 곁으로 한 걸음 다가온 모습으로 재탄생할 서울 신문로 1가 ‘망치질하는 사람’, 시민광장, 아트셸터 ‘흐름’의 낮(위)과 밤 조성 계획도.

지하철 옥수역에 피어난 거대한 화분은 역을 지나치는 바쁜 시민들의 피곤한 일상을 예쁜 색으로 보듬으려는 이상진씨의 마음이다. 서울숲에 우뚝 솟은 조각가 원인종씨의 ‘먼 곳에서 오는 바람’은 숲과 한강을 이어 자연과의 단절로 삭막한 서울을 생태친화의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평소 외지고 음침한 곳으로 지나가기조차 꺼려지던 동십자각과 신용산 지하보도는 이영조씨와 정원철씨의 손이 닿자 산뜻한 도시공간으로 튀어 올랐다.

박삼철 단장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도시가 곧 우리 삶의 작품”이라고 도시갤러리의 뜻을 풀었다. 박 단장은 또 “빈 터나 자투리 공간에 미술을 끼워 넣는 베풀기 식 문화정책이 아니라 미술이 도시에 꼭 필요한 구성 요소이자 시민의 도시 문화활동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스케이프(infra-scape)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쪽으로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도시는 이제 캔버스다.
자료협조 서울시 도시갤러리 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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