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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국민 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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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나라 최초의 제과회사는 1945년 설립된 해태제과다. 그해 국내 최초의 제과인 연양갱을 선보였다. 과자 붐이 본격적으로 인 것은 70년대다. 산업화로 인한 인스턴트 식문화와 맥을 같이했다. 지금까지 장수 과자로 살아남은 스테디 셀러들이 속속 나왔다. 71년 해태제과의 부라보콘을 필두로 농심 새우깡, 삼양 뽀빠이가 나왔다. 74년 오리온 초코파이와 해태의 에이스 크래커, 이듬해 맛동산(해태)은 고급 과자 시장을 열었다.

이 중에서도 초코파이와 새우깡은 국민 과자의 반열에 올랐다. 초코파이는 해외 출장 중이던 연구원이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초콜릿도 귀한 시절에 마시멜로까지 더하니 그만큼 세련된 과자가 없었다. 당시에는 고단백·고칼로리 영양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물론 최근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팔린다. 중국·베트남·러시아 등에서 고급 과자로 히트를 쳤다.

과자 유해 논란이 날로 거세지지만, 초코파이의 친숙한 이미지는 여전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는 CM송에, 89년부터는 아예 제품명에 ‘情’자를 붙였다. 한국적 정서에 맞닿은 듯한 이미지는 영화에도 활용됐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남북 병사들이 친근하게 초코파이를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온다. 몸은 스무 살이지만 마음은 다섯 살인, ‘말아톤’의 자폐 마라토너는 초코파이만 생각하면 불끈 기운이 솟는다.

그러나 서민성이라는 측면에선 새우깡이 단연 앞선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 자꾸 손이 가”라는 중독성에, 가난한 술자리 안주로 부동의 위치를 지켰다. 이번에 이물질로 문제가 된 경우처럼 새우깡이 어울리는 장소는 노래방·MT 장소 등이다. 손에 쥐고 먹기 편해 아이들의 첫 과자가 되기도 했다.

새우깡과 같은 해에 태어난 최재경은 『숨쉬는 새우깡』이라는 소설을 썼다. 새우깡 개발자인 남자가 과자의 완성을 앞두고 억울하게 죽은 뒤, 그 영혼이 여자 아이에게 깃든다는 설정이다. 여자 아이는 새우깡과 함께 태어나 새우깡을 먹으며 자란다. 여자 아이의 역사는 새우깡의 역사이자 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런 새우깡이니 ‘생쥐깡’ 파문이 경악일 수밖에 없다. 새우깡 하면 떠오르는 한두 가지 추억을 가진 우리에게 새우깡은 그저 새우깡이 아니다. 우리의 충격은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선 듯하다. 새우깡이 불러오는 한 시대, 혹은 유년의 한 시기가 훼손된 듯한 상실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