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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사태, 대만 총통선거 흔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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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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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가 화약고로 변했다’.

대만 총통 선거(22일)를 하루 앞둔 21일 현지 유력지인 연합보(聯合報)가 던진 화두다. 티베트 사태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야당인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가 손쉽게 이겨 8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티베트 사태가 대만 독립을 외치는 민진당(여당)의 셰창팅(謝長廷) 후보에게 역전의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주제는 ‘독립이냐 경제냐’에 있다. 집권 민진당이 추진해온 중국으로부터의 독립노선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고 친중국적인 국민당은 그보다는 경제 회복을 우선으로 내세운다.

총통 선출과 함께 여당의 셰 후보가 제시한 ‘대만 이름으로 유엔에 신규 가입’하는 방안, 야당인 마 후보가 제시한 ‘중국 일부 자격으로 유엔에 복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투표를 한다. 이 투표는 투표율이 절반을 넘지 못하면 효력을 상실한다. 총유권자는 1732만5508명.

티베트 문제가 터지자 셰 후보의 반격은 매서웠다. 그는 18일 기자회견에서 “마 후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국과 통일하자는 것이다. 만약 대만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제2의 티베트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외쳤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유권자들의 공감을 샀다. 특히 20%가 넘는 부동층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타이베이(臺北)에서 무역업을 하는 왕바오쥔(王保君) 사장은 “중국 당국의 무자비한 티베트 시위 진압을 보고 통일에 대한 생각이 가셨다. 셰 후보의 주장에 일리가 있으며 그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만정치 평론가인 리핑(李平)은 “티베트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너무 커져 막판에 부동표가 대거 셰 후보에게 몰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부 조사에서는 티베트 사태 이후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두 자리에서 한 자리 숫자 이내로 좁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 후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같은 날 그의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그는 중국 당국의 티베트 유혈진압에 대해 “만행이고 자만에 차 있으며 멍청한 짓”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티베트 사태가 악화하면 집권 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코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 중국 유화책을 주창했던 마 후보가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마 후보는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대만체육위원회 양중허(楊忠和) 위원은 19일 “어떤 상황에서도 올림픽 참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 후보를 비난했다. 체육계 인사 대부분도 마 후보 낙선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마 후보는 안팎으로 비난이 거세자 19일 오후 “중국이 티베트에 대한 무력진압을 계속하고 사태가 악화될 경우에 한한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번 발언으로 최소한 100만 표 이상을 잃었다는 자체 분석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다섯 번의 타이베이 시의원과 두 번의 가오슝 시장 선거에서 대부분 초반의 불리함을 역전으로 만회한 셰 후보의 별명은 ‘오뚝이’. 순탄하게 출세 코스를 달려온 인기 정치인 마잉주는 ‘미스터 클린(Mr. Clean)’. 두 사람의 이미지 대결에 티베트 요소가 가세하면서 막판으로 치닫는 대만의 총통선거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타이베이=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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