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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Earth Save Us] 한강 515㎞ 맑은 물길 지키는 ‘맑은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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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강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 검룡소에서 차고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있다. [사진=안성식·최승식 기자, 양영석 인턴기자]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힘있게 흐르는 한강.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 검룡소(儉龍沼)에서 인천시 강화도 한강 하구에 이르는 514.8㎞의 물줄기는 한민족의 숨결이자 젖줄이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았던 한강은 남한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400만 명의 생명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발전과 인구증가로 오염에 신음하기도 했다. 최근 물이 맑아지고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지만 마음을 놓지는 못한다.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22일)을 앞두고 한강 지킴이들을 만나 ‘물 사랑’ 얘기를 들었다. 

검룡소 40년 친구 김부래씨
“발원지 물 솟을 때 울림은 한강의 심장박동”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 아래 해발 900m의 산속에서 한강은 시작된다. 한강 발원지 검룡소에서 솟아오른 물은 1300리 대장정을 시작한다. 둘레 20m, 깊이를 알 수 없는 이 작은 소(沼)에서 하루 2000㎥의 물이 솟아 나온다.

이런 검룡소에겐 40년 지기 친구가 있다. 금대봉 기슭 작은 집에서 아내와 둘이 사는 김부래(66)씨다. 젊은 시절 산이 좋아 태백으로 들어와 낮에는 산을 타고 밤에는 음악(밴드) 활동을 했다. 10여 년 전부터는 사업을 접고 산을 타면서 검룡소를 돌보고 있다. 산을 안내하고 잡지에 기고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검룡소 가까이 가면 물이 솟느라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강의 심장 박동 소리지요.”

1970년대 초, 김씨가 처음 봤을 때 검룡소는 온통 돌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용틀임하듯 새겨진 물길만은 선명했다. 86년 태백시와 태백문화원에서 메워진 소를 복원하자 심장 박동 같은 물소리가 살아났다. 다음 해 검룡소는 한강의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됐다.

김씨의 하루 일과는 이런 검룡소를 살피면서 시작된다. 하루 10시간 이상 ‘무장공비 산 타듯’ 산을 오르며 검룡소와 그 일대를 점검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검룡소의 모든 것을 보고서로 작성해 태백시에 제출한다.

그는 ‘검룡소 해설가’이기도 하다.

“물이 나오는 굴 속에 검은 용이 살았다고 해서 검룡소예요.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용틀임을 하며 여기까지 찾아온 건데 마을에 내려와 소를 잡아먹자 사람들이 굴을 메워버렸지요.” 김씨는 “검룡소가 힘차게 박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글=한은화 기자



팔당 환경감시원 윤희정씨
“멱감고 놀던 고향의 강 … 오염 안 될 일이죠”

윤희정(31)씨는 결혼 한 달 남짓 된 새댁이지만 다소곳이 있을 새가 없다. 울타리를 뛰어넘고, 잡초 더미를 헤치고, 오염 배출구를 찾아다닌다. 그는 물을 오염시키는 업소 등을 찾아내 벌주는 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단 소속 공무원이다.

환경부·서울시·검찰에서 파견된 환경감시단의 사무실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다. 서울·인천·경기도 전역과 강원·충북 일부 지역까지 남한 면적의 3분의 1을 58명이 관할한다.

생일인 17일에도 윤씨는 동료들과 함께 모터 보트로 팔당호 순찰을 하고, 주변 공장의 방류수 상태를 점검했다. 여성이라 단속하러 다니는 게 쉽지는 않다. 음식점·숙박업소의 오수처리시설 뚜껑을 힘겹게 열면 악취와 함께 모기 떼가 달려들어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는 “가평의 한 모텔은 지하 오수처리시설이 물에 잠겨 오수가 콸콸 넘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도 모르고 있더라”며 “욕을 먹어도 원칙대로 철저하게 단속해 한강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뒤 2년 전부터 감시단에서 일하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감시단에 들어온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멱 감고 놀던 강이 더러워진 게 안타깝고, 그걸 다시 깨끗하게 하는 일이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강은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것 같다”며 “아끼고 잘 돌보면 강은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준다”고 강조했다. 

글=강찬수 기자



돌아온 한강 어부 김원경씨
“80~90년대 씨말랐던 물고기 다시 돌아와 한 시름 놨어요”

한강이 서해로 들어가는 마지막 코스인 경기도 고양시 한강 하류. 서해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바람에 물빛은 언제나 희뿌옇다. 고양시 법곶동에 사는 ‘송포선단’ 소속의 어부 김원경(54)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반 평생 민물고기를 잡았다. 한강이 그의 평생 생업 터인 것이다. 김씨가 처음 작은 목선을 타고 어로에 나선 것은 40년 전인 1968년 14세 소년이었을 때다. 4남1녀의 장남인 그는 아버지를 여의자 초등학교만 마치고 배를 탔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강 하류는 거짓말 좀 보태 ‘물 반 고기 반’이었어요.” 그물만 던지면 동자개(일명 빠가사리)·숭어·잉어·붕어 같은 민물고기가 한가득 올라왔다. 깨끗한 한강이 여섯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 준 것이다.

“70년대 후반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흘러 들면서 물이 오염되기 시작했죠. 민물고기도 급격히 줄었어요.” 고기가 안 잡히자 김씨는 78년 강을 떠나 20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10년 전 다시 돌아왔다.

“요즘은 한시름 놨어요. 한강 하류 수질이 좋아진 것을 피부로 느껴요. 10년 전에 비하면 어획량이 두 배 정도 늘어났으니 놀랄 만한 일이죠. ” 김씨는 “한강은 영원한 친구이자 삶의 터전”이라며 “한강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하류와 둔치를 친환경적인 생태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글=전익진 기자



‘아리수’ 35년 증인 김정우씨
“한강 수돗물 수질 알고나면 많이들 마음놓고 마실 텐데”

서울시 강북아리수정수센터의 김정우(60) 운영과장은 35년간 수돗물 생산과 환경 분야 업무만 해온 ‘물 베테랑’이다. 14일 경기도 남양주 한강변 정수장에서 만난 그는 페트병에 담긴 수돗물 ‘아리수’부터 권했다. 정수장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김 과장은 “한강물로 만든 수돗물은 유럽보다 (석회 성분이 적어) 훨씬 부드럽다”고 자랑했다. 식물플랑크톤에서 나는 흙냄새·비린내를 막기 위해 분말 활성탄을 사용하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소독약 사용도 반으로 줄였단다.

“1970년대는 수돗물의 질보다 양이 문제였죠. 고지대에서는 제한급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 과장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야 하느냐’ ‘바이러스가 검출됐느냐’는 논쟁이었다. 그는 “97년 바이러스 논쟁 이후 서울시 수돗물 수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말했다. 투자도 늘고 정수장 사이에 수질 비교평가도 진행됐다.

김 과장은 수돗물이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라는 점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요즘 수돗물 수질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훨씬 많은 분들이 마음 놓고 마실 것”이라고 자신한다. 1908년 9월 서울 뚝도정수장에서 국내 처음으로 수돗물을 생산한 지 꼭 100년 되는 올해 수돗물이 시민의 사랑을 되찾았으면 하는 게 김 과장의 소망이다.

글=강찬수 기자, 사진=안성식·최승식 기자, 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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