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를 집에서 직접 손질하고 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본에선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즉석식품(레토르트 식품)을 판매한다. 소스까지 발라 알맞게 구워 포장한 것이다. 일본 주부들은 대부분 이 레토르트 장어팩을 사다가 마술사처럼 간단하게 장어덮밥을 만들어 낸다. 나도 역시 넉넉하게 사다가 냉동실에 넣어 두고 자주 장어덮밥 마술을 부린다. 미국에서도 장어를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지만, 중국산이 판을 치고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게 많아 비싸더라도 일본에서 한꺼번에 구입한다.
사실 장어덮밥은 한국의 삼계탕 같이 여름철 복날에 먹는 음식이다. 일본 사람들은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몸이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장어덮밥을 찾는다. 달큼한 간장소스를 발라 노릇하게 구운 장어를 공기밥 위에 얹어 먹는 장어덮밥은 더운 날 빼놓을 수 없는 맛이다. 장어는 고단백이어서 허약한 사람의 기력 회복을 돕는다. 일반 생선보다 비타민A가 100배나 많다. 일본에서 토왕일(土旺日· 일본의 복날) 아침에 장어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결혼 첫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자주 만들었던지 지금도 장어덮밥만 보면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엔 장어를 팩째 데워 먹기 좋게 썰어 밥 위에 얹어 줬다. 요즘은 질리지 않게 아삭하게 절인 오이를 얹고 산초가루를 뿌려 만든다. ‘박찬호 아내표 장어덮밥’은 손님을 초대했을 때 마지막에 내는 고정 메뉴이기도 하다.
찬호씨는 장어덮밥을 아주 좋아한다. 결혼 전 미국에 혼자 있을 때도 경기 전날 자주 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단다. 찬호씨 고향(충남 공주)의 금강에서 장어가 많이 잡혀 어릴 적 많이 먹어 봤다고 한다. 지금도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께서 아들에게 꼭 챙겨 먹이는 것 중 하나가 장어 요리다. 지금은 찬호씨에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따뜻한 장어덮밥으로 힘을 돋워 줘야겠다.
■만들기=①장어는 간장소스로 양념돼 있는 것으로 준비해 팩째 뜨거운 물에 담가 데운다. ②오이는 껍질째 소금에 문질러 씻은 뒤 채썰어 참기름과 통깨를 넣고 무친다. 오이를 소금에 문질러 씻으면 숨이 죽어 부드러워지면서 적당히 간이 배어 아삭한 맛이 산다. ③따뜻한 밥에 장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얹은 뒤 장어가 부서지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가볍게 섞는다. ④볼에 장어 밥을 담고 통깨에 버무린 오이를 얹는다. 장어소스를 전체에 고르게 붓고 산초가루를 뿌려 낸다.
■장어소스가 없다면=간장 90cc(6큰술), 설탕 50g, 맛술 80cc(5⅓큰술), 술 22.5cc(1½큰술)을 준비한다. 밑이 두꺼운 냄비에 맛술과 술을 넣고 한소끔 끓여 알코올이 날아가면 설탕을 넣는다. 고루 저어 설탕이 녹으면 간장을 넣는다. 아주 약한 불에서 걸쭉해지도록 15분 정도 졸여 만든다. 1인분에 75cc 정도.
박리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