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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유랑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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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 웃음에 주름살 하나 펴졌다가 불효자라는 자책에 주름 하나 더하는 인생. 봄부터 팔도를 떠도는 각설이 김상철씨의 삶이다.

김상철(39)씨는 이달 초 경북 김천에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찾아 큰절을 했다. 그는 각설이 유랑 공연단의 일원이다. 봄부터 팔도 곳곳의 축제가 열리는 곳이나 장터를 찾아 떠돌며 각설이 놀음을 펼친다. 지난 6일 경북 경산 풍물장터의 올해 첫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말까지 유랑이 이어진단다. 그러다 보면 언제 뵐지 모르는 어머니이기에 당분간의 하직 인사를 올린 것이다.

가난으로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구두닦이를 한 김씨. 밤무대 생활을 하는 고향 선배에게서 배운 각설이 놀음이 삶의 밑천이다. 청각장애에 말도 어눌한 김씨지만 지난해 충북 음성에서 열린 품바 대회에서 품바왕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7일 일요일에 경북 청도의 공연단 숙소에서 동료, 그리고 week& 기자와 함께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을 보던 그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출연자가 "병드신 어머니께서 빨리 완쾌되셨으면 한다"는 대목이었다.

김씨는 방에서 나와 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전화를 했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우리 어무이가 몸이 안 좋으시다네요"라고 했다. 그날 아침 김씨가 잠시 휴대전화를 들고 사라졌다 나타난 뒤에도 들었던 얘기였다. 그의 어머니는 당뇨에 중풍을 앓고 있다. 그런 그이지만 공연에 나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때면 잠시 어머니 생각을 접는다고 한다. '멍석'이 펼쳐지면 넝마 같은 바지저고리를 걸치고 깡통을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각설이 춤을 춘다. 동료 각설이 가수가 노래할 때는 북.장구로 흥을 돋우기도 하며 시름을 잊는다.

봄부터 떠도는 것은 김씨만이 아니다. 다른 서커스.각설이 공연패들도 지난 주말 기지개를 켜고 남도로 떠났다. week&도 그들을 따라 봄마중에 나섰다.

글=권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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